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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Dec 07. 2023

보여지는 아이들

1.

나는 소연이에게 항상 질투가 났다. 하얗고 작은 얼굴에 긴 속눈썹, 짙은 쌍꺼풀 거기다 키까지 크다.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는 외모가 제일 부러웠다. 소연이의 영어 이름은 소피. 외모가 영어 이름에 더 어울리니 사람들은 소피라고 기억한다.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이다. 왜 난 혼혈이 아닐까. 소피를 볼 때마다 나도 혼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피였으면 세상 바랄 것 없이 행복할 텐데……. 그러나 소피는 언제부턴가 조금 어두워 보였다.     

“소피! 야 우리 벌써 내년이면 6학년이야. 꺄!”

“미쳤다. 이러다 금방 중학생 되는 거야? 흑”

“너 아직 엄마가 학원 가라는 소리 안 해?”

“응. 안 해. 엄마는 그런 거 관심 없어. 난 너랑 수학학원 다니고 싶은데.”

“미쳤냐? 학원 안 다니는 게 좋지. 나도 너랑 다니고 싶긴 하지만.”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는데 듣지도 않아. 엄마가 요즘 이상해.”

“무슨 소리야?”

“그냥 촬영하러 한 번씩 서울 가고 하는 건 좋았는데. 너무 바빠지니까 학교도 못 가고 해서 내가 학교 고만 빠지고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고 했지. 근데 내 말은 잘 듣지도 않아. 그리고…….”

“그리고?”

“밤에 자다가 깼는데 엄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아주 가까이. 완전 깜짝 놀랐잖아.”

“야. 엄마니까 쳐다볼 수도 있지.”

“그건 그런데 엄마 표정이 이상했어. 무서웠다고.”

“야 네가 그러니까 나도 무섭다.”    

      

그 대화 이후 소연이는 점점 더 바빠졌고 가끔 학교에 나올 때마다 소연이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소피가 부러웠다. 학교 안 가도 좋으니 소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연이한테 카톡이 왔다.     

[진아. 내 인스타그램 봤어?]

[오 소피~내 핸드폰은 인스타그램은 못 보고 엄마 거로 봤지. 너 사진이 어른 같아.]

[ㅋㅋ 그 작가님이 사진을 잘 찍는 거지. 유명한 작가래. 진. 우리 엄마가 자꾸 인스타그램만 쳐다보고 있어. 자꾸 다른 아이 사진 보여주고 인별라이브도 엄마 땜에 억지로 하고 창피해 죽겠어. 너 라이브 해 봤어?]

[아니 난 인스타도 엄마 걸로 가끔 봐. 엄마가 못하게 해. 너 하기 싫으면 안 하겠다고 말해.]

[엄마 내 말 안 들어. 나 학교 가고 싶다.]

[야 난 네가 개부러워.]

[개부럽긴. 난 이런 거 하기 싫어. 인스타에 #혼혈키즈모델 한번 쳐봐.]     

그러고는 톡이 끊겼다. 난 엄마에게 부탁해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보았다. #혼혈 여기까지만  치자마자 엄청난 어린 혼혈 아이들의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 소연이 알지.”

“아 소피? 한국 이름이 소연이었지. 걔가 왜? 잘 지내지?”

“응. 소연이가 인스타에 #혼혈키즈모델 쳐 보라고 해서. 근데 이걸 왜 소연이는 나보고 보라고 한 걸까?”

“이렇게 많은 아이가 있으니 부러워하지 말라는 거 아냐?”

“그런가? 소연이는 모델 하기 싫대.”     

그 후로 소연이는 내가 톡을 해도 답이 안 오고 학교에도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핸드폰을 보니 소연이한테서 전화가 와 있었다. 무려 10통이 넘게. 다시 전화해 봤지만 소연이는 받질 않았다. 너무 걱정이 됐다.          


2.

숨결이 느껴져 눈을 뜨니 엄마가 내 눈앞에 있다. “엄마, 뭐 해”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미안, 다시 자.” 그러고 엄마는 나갔지만 난 다시 잠들지 못한다.     

다음 날 나는 엄마한테 물어본다.

“엄마 어제 왜 그랬어?”

“뭘 왜 그래. 네가 예뻐서 쳐다봤지.”     

엄마는 아침을 만들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엄마는 내가 잠귀가 밝아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깰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나의 예민함에 대한 얘기가 나올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엄마의 대답이 짧다. 바쁜 날이라 그런가. 어제 엄마는 오늘 중요한 촬영이 있다고 들떠 있었다. 덕분에 오늘도 학교에 못 가겠군. 처음에는 학교 안 가고 촬영하러 가서 예쁜 옷 입는 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어렵다. 하면 할수록 더 잘할 줄 알았는데 표정이 굳고 피곤해진다. 점점 재미가 없어져 이제 학교에 다시 가고 싶다. 엄마는 건성으로 말했지만, 어젯밤의 일그러진 엄마의 표정이 자꾸 생각난다.     


내가 본격적으로 촬영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아빠는 내가 모델 일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처음엔 나도 엄마 편을 들어 촬영하고 싶다고 했고 공부 더 열심히 하겠다고 아빠와 약속했다. 그런데 점점 더 바빠지는 내 모습에 아빠는 화를 자주 냈다. 하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해 왔던 인스타그램에 나의 팬들이 많다며 엄마는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엄마가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너무 슬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더 행복하길 바라면서 예쁜 표정도 짓고 예쁜 옷도 입어 본다. 그러면 엄마는 어김없이 핸드폰으로 내 모습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그러면서 다른 포즈를 제안한다. 그럴 때면 좀 짜증 나고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엄마 말을 듣는다.     

“네 아빠는 세상 둔하고 단순한데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할까? 날 닮았나? 나도 그렇게 예민하지 않은데.” 엄마는 이젠 아빠도 나도 다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엄마 말대로 나는 감각이 좀 예민하다. 소리에도 예민하고 못 먹는 것도 많고 뭔가 만질 때 느껴지는 것이나 온도에도 예민하다. 그래서 나는 모래놀이나 점토 놀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는 좀 괜찮은데 모래를 밟거나 느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직도 그 느낌이 싫긴 하다. 엄마가 힘들다고 말하는 게 이해는 가지만 사실 나도 힘들다. 그 잔소리, 하소연 듣고 있는 게 더 힘들다.     

하루는 엄마가 인스타 라이브가 있을 예정이라고 밤중에 내 머리를 빗고 입술에 글로스를 발라 준다. 나는 창피해서 싫다고 계속 안 하겠다고 하며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내 머리를 뭉텅이로 잡고 세게 끌어당겼다. 너무 아프고 놀라서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를 바라봤다. “눈물 닦고 하라면 하는 거야.” 엄마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만히 엄마가 하라는 대로 그냥 카메라만 보고 웃지 않았다. 분위기가 썰렁해진 라이브 방송에 엄마는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오늘은 소피가 마법에 걸린 날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인사만 하고 끝낼게요. 행복한 밤 되세요!” 마법에 걸리다니. 딸 생리하는 것까지 전국적으로 소문내는 엄마. 그런 엄마가 소름 끼치게 무서워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아무 데도 못 나가고 집에 감금됐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아빠한테 말 안 하려다가 내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챈 아빠가 물어보는 바람에 난 울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아빠한테 다 말해버렸다. 역시나 둘은 집이 발칵 뒤집히게 싸웠고 나는 학교가 아닌 이모네 집에 며칠 가서 지내게 되었다. 모든 걸 다 진이한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진이를 믿긴 하지만 학교 아이들은 카톡으로 다 소식을 주고받아서 안 좋은 소문이 도는 게 싫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는 나에게 엄마가 아프다고 얘기를 했다. 엄마는 실제로 안방에서 자고 계셨다. 그리고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게 될 거라고도 했다. 내일 이모가 회사를 쉬고 우리 집에 올 거라고 하며 아빠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고 나가셨다. 그렇게 나와 엄마 둘이 집에 남았다. 엄마는 많이 아픈지 계속 방문을 닫은 채 나오지 않는다. 엄마와 얘기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내 방에 앉아 엄마한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난다. 엄마는 가끔 냄새를 없앤다고 촛불을 켜곤 했는데 그 냄새인 거 같아 엄마가 일어났나 방 앞으로 갔는데 웃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는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난다. 느낌이 이상해 방문을 열려고 하니 잠겨 있다. 타는 냄새가 계속해서 나서 불안한 마음에 빨리 아빠한테 전화하는데 받질 않는다. 그다음 생각나는 사람이 가까이 사는 진이라 진이한테 바로 전화를 한다.

         

3.

소연이에 대한 소문은 있어도 나는 끝까지 소연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소연이는 미국으로 다시 갔다는 소문도 있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가끔 소연이가 교복을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정말 이쁠 텐데. 소연이가 궁금하고 보고 싶을 때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본다. 거기에는 아직 초등학생인 소연이가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만 존재하는 소연이. 오늘도 혹시나 모를 기대감으로 댓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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