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미 Dec 28. 2023

나 여기 있어요_2

그림_윌리엄 아돌프 부게로 <Song of The Angels 1881>

선우와 혜원은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아기의 시신을 발견하였고 둘은 여러 번 경찰서에 출두해야만 했다. 시신의 자리를 알게 된 이유를 경찰은 믿었을 리가 없고 혜원의 최근 병원 수술 기록과 DNA 검사 결과 부부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고 일단락되었지만, 완전히 혐의를 벗을 수는 없었다. 


‘가혹하다. 정말 가혹하다.’ 혜원은 생각했다. 아기를 끔찍하게 원하는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잠도 오지 않았고 어쩌다 잠이 잠깐 들더라도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치며 깼다. ‘그 아이가 나한테 왔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울고 또 울었다. 결국 혜원은 정신의학과를 다니며 상담도 받고 약의 도움을 받으며 일상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계속 생각했다. ‘신은 나한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왜 하필 아기를 못 낳는 나를 택한 것일까.’ 병원에 갔다 집에 다가가 혜원은 엘리베이터 점검 중이라는 사인을 본다. 산에 근접한 30년 된 낡은 아파트의 공동 현관은 비밀번호 따위를 누를 필요 없이 그냥 유리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혜원은 이 낡은 아파트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운동해야겠다 생각하고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올라가는 복도에 창문이 열려 있기라도 하면 새가 들어오기도 하고 한 번은 1층에서 고양이가 들어와 계단에서 서성이는 모습도 봤다. ‘이곳에서는 좋은 일만 일어나리라 기대하고 왔는데.’ 복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올라가는데 4층에 다다르니 벌써 숨이 찬다. 그때 ‘삐~’ 또다시 혜원의 귀에 이명이 들린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게 들린다. 깜짝 놀라 움찔하며 서 있다가 숨을 가다듬고 한 걸음을 올리려는 순간 희미하게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핫. 설마 아니겠지. 윗집에 아기를 키우는 집인가.’ 아기 우는 소리는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지만 이명이 들린 것이 꺼림칙하다. 5층으로 올라가는데 503호에 사는 여자가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나오다 혜원과 마주쳤다. 혜원은 아기의 우는 소리가 옹알이로 바뀌며 머릿속이 너무 정신이 없는 나머지 인사를 한다는 게 그만 “아기가 있으신가 봐요?”라고 묻고 말았다. 살짝 당황한 503호 여자는 “아니요. 아기 없어요.”라고 대답하고 급하게 종종 계단을 내려간다. ‘아 씨.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경찰에 말해야 할까?” 그 집에서 들은 아기 소리에 대해 선우한테 설명한 후 물어본다. 

“어떤 여자였어?” 

“아주 젊어 보이진 않았어. 한 30대 정도” 

“혜원아. 아기 소리를 들을 때 넌 어떤 느낌이야?”

“너무 슬프고 아파. 처음에 난 내가 아기를 너무 원해서 그렇게 듣는 줄 알았어. 그런데 평소에 지나가다 듣는 울음소리들하고 달라.” 혜원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럼, 일단 경찰에 신고하자. 경찰이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참고하겠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혜원은 눈물을 닦으며 묻는다.

“더 슬픈 건 그 아기들을 살리지도 못한다는 거야. 죽은 후에 찾으면 뭐 하냐고.”

“죽은 후에도 찾아달라고, 여기 있다고 너한테 말하고 있잖아.” 

이 말이 끝나자마자 선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둘은 말없이 서로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다음날 혜원은 503호 앞에서 있었던 일을 경찰에게 말했고 경찰은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이 여자로 인해 시신을 찾은 것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 기록을 남기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혜원은 그날 이후로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해서 다녔고 항상 같은 자리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하루는 닫힌 503호 문 앞에 혜원이 우두커니 서 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503호 여자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전에 마주쳤던 분이시네요.” 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한다. 

“7층에 이사 오신 분 맞으시죠? 계단 운동 하시나 봐요.”

“아 네.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었어요.” 혜원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네. 안 바쁘시면 차 한잔하고 가실래요?”

평소 같으면 바쁘다고 거절했을 성격인 혜원은 무엇에 홀린 듯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혜원의 머릿속은 아기의 옹알이 소리를 듣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태연한 척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어두웠고 깔끔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집안을 둘러보다 혜원은 어느새 부엌의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옹알이 소리는 힘없이 멈췄다. 

“우리 집 냉장고와 같은 거네요.”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여자는 티백을 꺼내 찻잔에 넣었다. 

“여기 앉으세요. 저는 혼자 살아요. 아이는 없으세요?”

“없어요. 남편과 둘이 살아요. 임신을 준비했는데 저희한테 아기가 와주지 않더라고요.” 혜원은 소파로 천천히 걸어오며 또박또박 말했다. 

“네. 그럼 무슨 일 하세요?” 여자는 대화의 주제를 돌린다.

“피아노를 가르쳤었어요. 지금은 쉬고 있고요.”

“피아노 선생님이세요? 저 취미로 피아노 배우다 말았는데. 집에 피아노도 있어요.”

그녀는 안쪽 작은 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혜원은 차를 몇 모금 마시고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그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한참 방치되어 있었는지 먼지가 뽀얗게 쌓인 피아노의 덮개를 올린다. 

“아…. 오신 김에 피아노 한 곡만 쳐주세요.” 여자는 마지못해 말한다.

혜원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잠시 묵념하듯 눈을 감았다 뜨고 천천히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연주한다. 연주가 끝나갈 때쯤 혜원은 등 뒤에서 싸늘함을 느낀다. 연주가 끝나고 뒤를 돌아보니 503호 여자는 무표정으로 서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원하신다면 피아노 레슨 해 드릴까요?” 혜원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자신도 모르게 물어본다. 

503호 여자는 고민할 여지없이 바로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이전 07화 나 여기 있어요_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