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_에드가 드가 <Waiting 1882>
'기다림의 방'이라..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누구를 기다리나. 몇 분이라 그랬지? 20분? 그러고 보니 핸드폰이 없는데 20분이 지나는 걸 어떻게 알아? 하하하하! 너무 웃겨서 소리 내서 웃는다. 누가 들으면 미친 사람인 줄 알겠어.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려 웃다가 멈칫한다.
"저기, 20분 후에 제가 알려드릴게요. 제가 화장실 갔다 오느라 계신 줄 몰랐네요."
"아, 네..."
"아, 그리고 죄송한데 이 부스 이용료는 천 원입니다."
"네?? 이게 게임도 아니고 그냥 앉아 있는데 천 원이에요?"
"네, 여기 사장님이 정하신 거라.."
"아.. 네.. 여기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포켓에서 꺼내 알바생에게 건넨다. 천 원을 받은 그는 문을 닫고 나간다. 나는 자꾸 웃음이 나는 걸 참느라 5분을 흘려보낸다. 왜 이렇게 웃기지? 나는 그렇게 혼자 어둠 속에 앉아 있는다. 어둠 속에 혼자 핸드폰 없이 앉아 있던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똥을 누는 것도 아니고 사우나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닌 이 상황이 갑자기 새롭게 느껴진다. 난 이런 경험 처음이야. 그제야 여기 사장님이라는 사람의 의도가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하면서 이왕 생각한 거 시간도 있겠다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 사장님은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나는 또 왜 들어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나무 냄새가 스멀스멀 난다. 편백나무 냄새 같기도 하고. 냄새를 맡으며 나는 깜깜하지만 눈을 감아본다. 밖에서는 게임기에서 나오는 음악과 소리가 그대로 들려 완전히 조용하지도 않아 명상을 할 분위기도 아니다. 그럼 명상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용도인 거야? 뭘 하라는 거지? 하긴 뭐 꼭 용도가 있어야 하나? 아니 천 원을 받았으면 용도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긴 밖에 있는 게임기도 내가 뭔가 조정을 하는 거 같지만 결국은 게임오버로 끝나는 건 마찬가지. 잠시 즐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용도는 없다. 살면서 어떤 목적 없이 기다려본 적이 있던가. 나는 그저 기다림을 기다린다. 나는 평소에 무엇을 기다렸지? 남편이 빨리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밥을 차려 놓고 아이가 밥 먹길 기다린다. 아이의 하원 시간이 되면 무사히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또다시 아이가 등원하기를 기다린다. 주말을 기다린다. 빨리 육퇴 하기를 기다린다. 아파트 대출을 갚길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좀 억울하네. 누가 날 좀 기다려주면 안 되나.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었구나. 갑자기 슬퍼진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깐. 어쩌면 이 미치도록 빨리 변하는 시대에 제대로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거야. 분명 그럴 거야. 그렇게 믿고 싶네. 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20분 지났습니다!" 그때 알바생이 밖에서 소리친다. 아니 20분이 이렇게 짧았어? 핸드폰 없이 있는 20분은 2시간 같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순식간이다. 당황해하며 문을 열고 나와 핸드폰을 확인하고 장바구니를 챙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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