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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Jan 25. 2024

고양이 머그컵_2

그림_루이스 웨인(1860~1939, 영국)

겨울 방학이 얼마 안 남았다. 영희는 운동을 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다이소에서 산 아로마오일 램프를 켜서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 한다. ‘아로마테라피. 이런 것이 필요한 날이 올지 몰랐다.’ 영희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이것이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일까 아니면 내 불안감이 더 높아지고 있는 걸까. 나의 쓸데없는 소비가 나를 살려줄까.’ 영희는 자신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건조한 일상에 바싹바싹 메말라가는 나를 무엇이 살릴 수 있을까. 비싼 화장품, 향긋한 아로마오일이 살릴 수 있을까.' 잊을만하면 그녀의 귓가에서 어서 응급처치를 하라고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삐-삐-' 얼른 너 자신을 구원하라고 이명이 들린다. 하지만 영희는 그럴 때마다 길 잃은 아이처럼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얼마 전 아이가 꿈을 꾸었는데 고양이와 엄마가 보였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씩 했었는데 정말 오랜만이다. 그때는 꼭 지어낸 이야기 같더니 이번엔 그럴듯하다. 엄마가 고양이를 쫓아가더니 여러 마리의 고양이 사이로 사라져 버렸단다.

“그래서 우리 아인이 울었어?”

“아니, 엄마가 슬퍼 보이지 않아서 안 울었어.”

“흠, 신기한 꿈이네. 너 지금 고양이 키우고 싶다고 얘기하는 거 아니지? 흐흐.”

“엄마, 나 비염 때문에 못 키우잖아. 힝.”

그렇게 웃으며 넘어갔지만 영희는 고양이 머그컵 때문에 딸이 그런 꿈을 꾼 게 아닐지 걱정된다. 이제 겨울 방학이 되면 두 달 동안 혼자만의 시간은 거의 없다. 영희는 다시 한번 고양이 머그컵을 꺼내서 드립백 커피를 컵에 걸치고 마치 다른 세계로 갈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비장한 자세로 끝까지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그녀의 안경을 벗어 살포시 옆에 둔다. 그녀는 그런 자기 모습이 어이가 없어 혼자 쓴웃음을 짓고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지 말자. 헛!’ 영희는 다시 한번 자기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너무 가볍다. 중력을 못 느끼는 듯 몸도 마음도 너무 가볍다. ‘세상이 내 손아귀 안에 있는 느낌. 이게 바로 초능력인가. 왜 딸한테는 이런 현상이 안 일어났던 것일까.’ 그녀는 소파에도 앉아보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을 해 본다.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이 어디더라. 에어컨? 책장? 냉장고?’ 영희는 자기도 모르게 사뿐히 책장 위에 도달했다 내려온다. ‘세상에 내가 왜 높은 곳을 찾지?’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다 커피가 바닥을 보이니 서서히 사라졌다. ‘완벽해.’ 영희는 자신도 모르게 만족의 미소를 짓는다.


어김없이 겨울 방학이 왔다. 학원을 싫어하는 딸은 모든 과목을 엄마표로 공부해서 방학이 되면 24시간 영희 옆에 붙어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학년이 더 올라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영희도 항상 방학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아이의 방학 스케줄을 짠다. 아이와 붙어있는 시간을 조금이라고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이번 방학 때 아인이가 일기 쓸 때 나도 일기를 써볼까? 각자 책 읽는 시간을 넣어도 될까?’ 매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방학 계획표에도 조금의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쉽게 나태해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학습 계획을 세워본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방학은 계획대로 보내지지 않는다. 특히 두 달이라는 긴 기간은 이미 시작부터 엄마들을 지치게 한다. 영희도 처음 몇 주는 딸과 계획표에 따라 알차게 보내다 주말에 가까운 곳에 가족 여행을 갔다 오니 집에 있는 게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체험 위주의 방학 계획을 짜기엔 너무 날씨가 춥고 그렇다고 학습만 하기엔 너무 지겹다. ‘어른인 내가 이렇게 답답한데 아이는 오죽할까.’ 하지만 생각보다 아인이는 집에 있는 시간을 꺼리지 않는다.  

    


  

드디어 영희의 남편이 안 쓰고 아껴두었던 휴가를 써 영희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남편과 딸이 둘이 데이트한다고 나갔다. 영희에게 무엇을 하고 놀지는 비밀이라고 말하며 새침한 표정을 짓는 딸. 그녀는 어느새 저렇게 커버린 딸이 기특하면서도 다녀와서 재잘재잘 끝없이 수다 떨 아이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영희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망설임 없이 고양이 머그컵을 꺼낸다. 커피를 컵 가득히 따라 오래오래 음미할 생각이다. 그녀는 커피가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 커피의 양이 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높은 온도로 뜨겁게 탄 커피의 향을 한번 맡고는 후후 불어가며 그토록 기다리던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눈을 감고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던 영희가 눈을 부릅뜬다. 그녀는 자기 안경을 집어던지고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간다.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눈앞에 펼쳐진 단지 내 조경은 영희의 눈에 평소와 너무 다르게 다가온다. 나무 한 그루, 풀잎 하나하나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가슴 가득히 살아있는 느낌을 만끽하던 찰나 저 멀리 새하얀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얼마나 하얀지 고양이의 몸에서 광채가 난다. 그 광채는 머리부터 시작해서 꼬리로 흘러내려 빠져나가는 듯 반짝거린다. 하얀 고양이는 영희를 기다렸다는 듯 쳐다보다 앞으로 조금 걸어가더니 다시 뒤돌아본다. 영희는 처음 고양이 컵을 보았을 때 느꼈던 미묘한 끌림을 이 새하얀 고양이한테서도 느낀다.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고양이를 따라간다.      


“엄마! 엄마 집에 없는 것 같은데?”

외출 후 돌아온 아인이와 아빠가 집안을 훑어본다.

“엄마 마시던 커피가 아직 따뜻한데. 잠깐 앞에 나갔나 보네.”

아빠는 컵을 들고 고양이 그림을 잠시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남은 커피를 마셔버린다. 집안을 둘러보던 아인이 눈에 바닥에 놓인 엄마의 안경이 들어온다. 아인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급히 현관으로 달려가 본다. 엄마의 어그슬리퍼가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Dear 구독자님 & 작가님


그동안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예전 1980년대 TV에서 방영되던 '환상특급'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어린 마음에 그 에피소드들을 얼마나 신기하게 봤는지 모릅니다.

그런 짧지만 기묘한 이야기들을 써보고 싶어서 매주 상상의 날개를 펼쳤는데 쉽지는 않네요 ㅎㅎ

이 소설집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시 새로운 기묘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돌아올게요! 꼭이요!

(이렇게 약속을 해야 계속 쓰겠죠??;;;)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쓰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흑흑

건강하시고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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