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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Jan 18. 2024

고양이 머그컵_1

그림_루이스 웨인(1860~1939, 영국)

    

영희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중고품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때 하염없이 아름다운 가게에서 이것저것 뒤척거리며 쇼핑한다. 다이소도 영희가 좋아하는 곳이긴 하지만 아름다운 가게는 어쩐지 충동구매를 해도 죄책감이 덜하다. 물건을 사서 스트레스를 풀 형편은 안 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다. 영희는 여기저기 느릿느릿 가게를 둘러보다 손으로 직접 빚은 듯한 머그컵을 발견한다. 고양이 눈이 선명하게 그려진 그 컵에서 그녀는 눈을 떼지 못한다. ‘보통 고양이 컵은 귀엽게 만들던데 왜 이렇게 눈을 선명하게 그렸을까.’ 영희는 그 머그컵의 묘한 기운에 끌려서 결국은 구매한다. 그녀는 기분이 우울한 날 고양이 머그컵에 커피를 내려 마실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좋아져 집으로 향한다.  

    

‘아이 하교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올까.’ 집에 돌아온 영희는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집정리를 하고 나니 벌써 딸 아인이의 하교 시간이다. 10분 정도 남은 시간은 커피타임. 커피를 마시지 않고 하교하는 아이를 맞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교 전 커피타임은 영희에게 마지막 평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녀는 새로 산 고양이 머그컵을 꺼내고 평소대로 커피를 내려본다. 머그컵을 다시 자세히 보니 고양이 얼굴이 살아 움직일 것같이 생생해 소름이 끼칠 정도다. ‘내가 왜 이걸 샀을까.’ 영희는 다 내려진 커피를 머그컵에 붓는다. 커피의 향은 영희의 마음을 한결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이 커피를 마시고 나면 왈가닥 아이를 맞이할 힘이 나겠지.’ 원래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영희는 아이가 태어난 후로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더 자라 학교를 보내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만 말 그대로 그 시간은 영희에서 잠깐 허락된 시간이다. 진정한 자신만의 시간은 이제 영영 없는 것 같은 박탈감. 그 박탈감에 하루하루 숨이 막힐 지경이다. 커피 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을 마시는데 갑자기 영희의 몸이 이상하다. 동공이 작아지고 찌릿한 느낌이 나더니 몸이 붕 뜨듯이 가볍다. 영희는 너무 놀라 머그컵을 떨어뜨린다. 남은 커피는 다 엎질러졌고 그녀는 완전히 정신 차리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난다. 영희는 서둘러 머그컵을 줍고 엎질러진 커피를 닦아낸다.
 “엄마! 나 왔어!! 뭐 하고 있어?”

훨훨 날아다니듯이 행동이 빠른 딸이 어느새 바닥을 치우는 영희 옆에 와 있다.

“어, 엄마가 컵을 떨어뜨려서.”

“와! 고양이다! 엄마 나도 이 컵에 마실래.”

“아냐. 이거 떨어뜨려서 씻어야 돼. 다른 컵에 우유 줄게. 엄마가 맛있는 빵 샀는데 같이 먹을까?”

다행히 딸은 더 이상 컵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학교 이야기를 재잘재잘하기 시작한다. 영희는 식은땀이 나도록 긴장했지만 티를 안 내려고 애쓴다. 아이에게 간식을 먹인 후 방과 후교실에 보내고 가만히 앉아서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생각해 본다. 아까 그 느낌. 몸이 가벼워지고 날아갈 듯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또 느끼고 싶다.’ 영희는 고개를 흔들고 남은 설거지를 마저 한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영희. 너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갱년기 증상인가?’ 참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하고 깨끗하게 씻은 고양이 컵을 부엌 찬장 깊숙한 곳에 넣어버린다.      



하루하루 같은 듯 다른 일상을 살면서 어느새 가을은 지나가고 기온이 뚝 떨어져 영희의 가슴속이 시려온다. 그런데 아이는 빨리 눈이 왔으면 좋겠다며 벌써부터 캐럴을 흥얼거린다. 날이 추워 온 가족이 뒹굴거리는 한 주말 아이가 아침을 먹으며 물어본다.

“참, 엄마 나 그 고양이컵 보여줘.”

영희도 잊고 있었던 고양이 머그컵을 아이는 어떻게 생각해 낸 걸까?

“아 그 머그컵 어디 치웠는데.. 여기 있네.”

이 컵으로 아이가 음료수를 마신다고 해서 별일은 안 일어날 것 같았다. 영희는 그때 자기 몸에 이상이 있어서 그랬던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아이에게 주스를 따라준다.

“엄마 이 컵 어디서 샀어? 한번씩 생각했어. 고양이 너무 이뻐.”

“이쁘다고? 너무 사실적이라 좀 무서운데. 아름다운 가게에서 샀지.”

“그럼 왜 샀어?”

그러게. 그걸 왜 샀는지 영희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이는 고양이 컵으로 주스를 벌컥벌컥 마신다. 아이들은 왜 나눠서 마시지 않고 한 번에 다 마셔버리는 걸까. 영희는 아이에게 이상한 반응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그러다 갑자기 애한테 뭐 하는 짓인가 죄책감이 든다. ‘하. 정말 한심하다. 나란 인간.’ 아이에겐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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