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이 Oct 22. 2022

풋 크림을 바르며 위안 얻기

일상의 뷰티 루틴으로 나를 챙기는 구체적 방법 3 


하얗게 뜬 각질 없이 매끄러운 발로 가꾸고 싶다면, 자기 전에 풋 크림을 바른 후 수면 양말을 신고 자면 도움이 된다. 물론 풋 크림 대신 일반 보습제여도 되고, 수면 양말 대신 랩으로 발을 감싸줘도 된다. 이러한 풋케어를 할 때, 좀 더 나아가 내면까지 어루만지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풋 크림을 바를 때 촉감 너머의 내면 의식에 집중해 보는 거다. 그러면 하루를 더욱 지혜롭게 마무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잠깐, 촉감 너머의 내면 의식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의아한 마음이 일어난 독자를 위해 설명을 하자면, 풋 크림을 바르는 동안 자신의 발을 어루만지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관찰해 보자는 의미다. 혹자는 화장품 바를 때 ‘아무 생각 안 하는데?’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일상에서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순간은 거의 없다. 오히려 ‘아무 생각도 안 하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이 필요할 만큼 우리 뇌는 1초 동안에도 수십 가지 감각적 자극을 통한 감정과 생각을 만들어 낸다.         

풋 크림을 바를 때 의식에 집중해 보자고 제안한 이유는, 온종일 내 무게를 지탱하며 분주히 움직여준 발에 대해 대체로 애틋하고 고마운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잠들기 전 피로한 발에 영양분을 주면서 감사함을 떠올린다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Ritual’으로써의 의미도 충분하다. 이 행위의 효과는 감사 일기나 명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바쁜 와중에 일기를 쓰거나 가부좌를 트는 게 버겁다면, ‘풋 크림을 바르는 동안 의식에 집중하기’는 시도해 볼 만하다.     

“어느 날 엄지발톱 깎다 보니 새끼발톱이 보이더라고. 80년 가까이 존재감 없이 제일 고생을 많이 한 놈. 너 거기 있었구나. 이지러지고 피맺히고 애쓴 놈이 제일 작은 너로구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속에서 만난 한 구절이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풋 크림을 바르면서 발가락과 발바닥, 발 뒤꿈치, 아킬레스 건을 차례로 감각하면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들여다보자.   

처음에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일이 문득 생각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중학생 무렵, 엄지발톱이 살에 파고들면서 상처가 크게 났고 결국 발톱의 반을 잘라내는 시술을 하던 날이 떠올랐다. 당시 시술대 위에 누우며 공포감을 이겨냈던 어린 시절의 나, 시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부축해 주셨던 아빠의 사랑을 되새기기도 했다. 이처럼 발에 얽힌 사건이나 추억을 떠올리며 연상되는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는 시간은 나의 심층 의식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같다. 

어느 날은 발에 지닌 부정적 관념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나는 발 볼이 넓어서 늘 앞코가 넓은 디자인의 신발을 선호했고, 발이 예쁜 사람을 부러워했으며, 발이 많이 노출되는 신발은 꺼려했다. 못생긴 발을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게 하고자 발톱에는 언제나 젤 패디큐어를 했고, 그래서 숨 쉴 틈 없는 내 발톱은 메마르고 거칠게 갈라져 있다. 나는 또 그걸 숨기기 위해 젤 컬러를 입히는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샌들 시즌이 지나면 발톱에 휴식기를 주자고 마음먹었다.  

특별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없을 땐 내 발 피부 안쪽으로 의식을 집중해 발의 뼈를 만져 보자. 무려 스물여섯 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는 발은 작은 부품들이 정교하게 조립되어 있는 얼마나 경이로운 부위인지! 평소에 하이힐을 즐겨 신는다면 온종일 웅크리고 있었을 발가락을 쫙쫙 펴주고 이완시켜주는 마사지를 해주면 좋다. 

이런 식으로 풋 크림을 바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의식의 흐름을 좇다 보면 때로는 내 과거와 마주하고, 평소에 나를 지배하고 있던 부정적 관념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를 통해 자신을 더 이해하고, 스스로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얻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내면의 치유를 경험하기도 하고.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발을 가꾸어야 하는 시기에 이왕이면 발과 함께 마음까지 돌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이전 11화 정화의 시간, 클렌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