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하기 힘든 동네서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10년 지기 친구 A가 있다. A와 가끔 만나면 서점도 같이 가고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A와 나는 책 취향이 어느 정도 비슷해서 서점에 같이 가는 재미가 있다. A 말고도 동네서점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고,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갖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친구에게 동네서점에 같이 가자고 말하기 힘들다. 나를 오랫동안 본 친한 친구나 가족이면 괜찮지만, 친한 지인의 경우 걱정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책에 1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서점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자연스럽게 서점 이야기가 나온다. A와 같은 사람이라면 같이 동네서점에 가고 싶은데, 과연 그 사람도 똑같을까?
다소 민감하지만 이에 대해 말을 하고 싶었다. 참고로 모든 동네서점이 그렇다는 것이 절대 아니며, 방문한 여러 서점들의 특징을 섞은 부분도 있다.
만약 동네서점을 처음 방문한다면 핸드폰에 지도 앱을 깔아야 한다. A구에 (가) 서점을 가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면 대략 (가) 서점의 주소, 홈페이지 혹은 SNS 주소, 리뷰를 볼 수 있다. 그중에 오시는 길을 살펴보면 A역 1번 출구 몇백 미터 이렇게 나온다. 실제로 A역 1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가) 서점이 보일까? 몇몇 유명한 서점은 출구에서 바로 찾을 수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이럴 때 지도 앱으로 경로를 확인하면서 골목으로 걸어가야 한다.
나는 동네서점을 찾아다니며 골목 풍경도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보통 큰길가의 풍경과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에 홍대나 강남과 같은 유명한 지역과 고층 빌딩만 있지 않다는 것을 동네서점탐방을 통해 깨닫고 있다. 그런데 만약 오래 걸어가기 힘들어하고 골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는 어떨까? 아마 그 친구는 “대단한 장소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게 찾아가야 되나?”라고 불만을 품을 수 있다.
경로를 따라 걸어가다 드디어 (가) 서점을 발견한 것 같다. 근데 실제로 보니 (가) 서점이 어디 있는지 안 보이네? 분명 지도 앱에는 도착한 것처럼 보이는데, (가) 서점의 간판은 잘 안 보인다. 이런 경우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간판이 작아서 한 번에 안 보이거나 혹은 아예 없는 경우다. 그래도 간판은 주변을 잘 살펴보면 금방 찾는다. 목적지를 찾았으니 고생은 끝일까? 아직 한 발 남았다.
국민 트로트 가수 임영웅 씨의 노래 중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가 있다. 이 노래를 엘리베이터가 없는 대학원 건물에 틀어놓고 싶었다. 아니,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계단으로 가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엔 계단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적지 않다.
코로나 이전 (나) 서점의 북토크에 간 적이 있었다. 중간에 사장님이 내려가서 휠체어에 탄 사람을 업고 계단으로 올라왔다. 당시 (나) 서점이 2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계단만 있었다. 다행히 휠체어 탄 분이 동행인의 도움으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이 혼자서 건물에 왔다면 과연 2층으로 갈 수 있었을까? 서점뿐 아니라 다른 가게도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이 계단만 있어서, 휠체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
2020년 11월 7일 책방열음*에서 경사로 라이브 북토크를 진행했었다. 해당 북토크에서 서점 사장님은 휠체어를 탄 친구가 책방에 쉽게 올 수 있게끔 경사로를 만들려고 한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진짜 경사로를 만들지 못했지만, 북토크를 통해서 휠체어를 탄 사람이 혼자서 갈 수 있는 곳이 많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점 손님의 뒷담화>에서 서점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경사로 라이브 북토크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서점 이름을 언급한다. 여담으로 책방열음은 2021년 11월 27일에 문을 닫았다.
내 주위에는 휠체어나 유아차를 사용하지 않고 쉽게 걸을 수 있는 사람만 있으니까 계단만 있어도 상관없을까? 적당한 단높이의 계단이라면 상관없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 단높이가 높다면 어떨까? 평소에 운동화를 신는 나는 괜찮지만, 상대가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상태라면 다칠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심지어 단높이도 높은데 계단 너비도 좁다면… 발을 헛디뎌서 떨어진다면 죽을까 봐 무섭다.
다리가 튼튼한 친구라면 상관없지만, 조금만 오래 걸어도 통증이 있는 친구라면 동네서점 투어를 같이 하자고 권하기 힘들다. 대형서점이라면 지하철에 내려 바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동네서점은 지도 앱으로 경로를 찾아도 오래 걸어야 한다.
근데 과연 이게 동네서점만을 탓할 수 있을까? 지하철에서 가까운 장소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임대료가 비싸다. 동네서점 사장님들 중에 건물주가 되어 자신의 건물에서 장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월세를 간신히 내며 버티는 사장님이 많다. 가격이 싼 곳을 찾다 보니 역에서 멀리 있는 높고 좁은 계단이 있는 건물밖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이라면 그런 곳도 임대료는 만만치 않게 비쌀 것이다.
그렇지만 서점만큼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장소였으면 좋겠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과 유아차를 타고 있는 아기도 동네서점에 자주 방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나도 친구들에게 동네서점에 같이 가자고 쉽게 권유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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