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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좋아합니다

소소한 제비 스무 번째 소식

by 릴리리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을 좋아했다. 언제부터였는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부터.


조용한 주택가에서 살았던 터라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기 보다는 주로 집 안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왕복 2차선의 도로를 하나 건너 언덕을 올라가면 동네 놀이터가 하나 있었다. 딱 한 번 거기 간 적이 있다. 그곳 아이들은 낯선 나를 환대해주며 다음에도 또 놀러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집에서 책을 읽는 게 더 재밌었다.

집에 있는 책을 외울 만큼 읽었을 때, 엄마는 나를 도서관에 데려 갔다. 책장 가득 책이 꽂혀 있는 그곳은 내게 천국이었다. 회원카드를 만들면 한 번에 다섯 권씩 책을 빌릴 수 있어서, 엄마 아빠 오빠 나 이렇게 네 식구 카드로 스무 권을 꽉꽉 채워 빌려다 읽었다. 대출 기한이 만료되기 전에 반납하고 또 책을 빌렸다.


주로 읽은 건 소설책이었다. 한국의 창작 어린이 소설을 가장 좋아했고, 미국 작가의 미스터리 소설 시리즈도 좋아했는데 누구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어린이 열람실의 책들이 시시해졌다. 웬만한 소설 책은 다 읽어서 읽을 게 없기도 했다. 그 때부터 위층에 있는 일반 열람실에서 책을 빌려다 봤는데,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시리즈를 좋아했다. 빨간 표지의 그 시리즈는 80권 넘게 있어서 하나씩 정복해가는 재미가 있었다. 좋아했던 주인공은 어딘가 유쾌한 이미지가 있는 에르큘 포와로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며 책을 빌려와도 더 이상 다 읽지 못하고 대출 연장만 하다가 반납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더 이상 예전처럼 도서관을 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드문드문 책을 빌려다 읽었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전쟁>을 빌려다 읽으며 어려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을 동경했다. 고등학교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사다 지로의 초기 작품을 좋아했다. 그 때 피카레스크 문학이라는 용어도 접했다. 왜 현대 소설에는 성행위가 빠지지 않을까, 같은 생각도 했다. 현대 일본 소설만 너무 읽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당시 내가 읽은 현대 한국 문학도 그랬다. 젊은 날을 그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랑(몸으로 하는 것이든 마음으로 하는 것이든)이기 때문일까,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다시 꾸준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수업이 있으면 학교를 매일 가야 했고, 애매한 공강 시간에 도서관 이상으로 가기 좋은 곳은 없었다. 우리 학교는 작아서 도서관 규모도 크지 않았지만, 대신 가까워서 언제든 들르기도 좋았다.

대출 권수 한도를 꽉꽉 채워 빌리는 욕심은 이제 부리기 힘들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남짓 걸려서 가방이 너무 무거우면 도중에 버리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두권 정도 빌리면 괜찮았다. 집과 학교를 오가려면 배차 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은 국철(지금의 경의중앙선)을 갈아타야 했는데, 간발의 차로 전철을 놓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기다릴 수 있었다.

이 때 많이 읽은 것은 체호프와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일본 현대 작가들의 소설이었다. 특히 체호프 단편선을 좋아했다. 얇아서 가방 안에 넣어 다니기 부담 없고, 이동하면서 읽기 좋았다.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시 도서관과 멀어졌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선 주말마다 할 것이 너무도 많았고 집 근처에 ‘번듯한 도서관’도 없었다. 최소 3층 이상의 단독 건물에 주차장이 딸린 마당과 화단이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번듯한 도서관’이다. 내가 처음 가봤던 도서관이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빌딩 한 층에 세들어있는 느낌의 작은 도서관은 왠지 발길이 가지 않았다.

그건 영화관이랑 느낌이 비슷하다. 옛날엔 단독 건물에 커다란 영화 포스터를 걸어 놓고 ’OO극장‘이라고 크게 써붙여 놨다면, 지금 영화관은 죄다 멀티 플렉스라 어느 건물의 두세 개 층을 쓰는 것이 고작이다. 밖으로 보이는 건 CGV나 롯데시네마 같은 영화관 이름 뿐이라,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지 매표소 앞까지 찾아 가야 비로소 알 수 있다. 화면도 작아져서 그냥 ’집 텔레비전보다 좀 크네’ 싶은 화면으로 영화를 봐야 한다. 그래서 영화관도 안 간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관은 크고 웅장한 화면에 사운드가 빵빵 휘몰아치고 매점 가판대에서는 진짜로 철판에 구운 말랑하고 쫀득한 버터구이 오징어를 파는 곳이다.


아무튼.

도서관과 멀어지고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인문학이나 과학 책을 읽었다. 주로 인터넷 서점에서 사서 읽었다. 더 이상 소설 속 가상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삼국지>는 다 읽었지만, 그건 순전히 게임에 빠져서다.


도서관과 다시 친해진 것은 강릉에 이사오면서부터였다. 강릉 시내는 어디든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어서, 여기에도 작은 도서관은 많지만 굳이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모루도서관까지 갔다. 강릉에서 제일 큰 도서관이라고 해서 많이 기대를 했는데, 규모가 크진 않아서 처음엔 좀 실망했다. 지하 매점도 규모가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다.

어렸을 때 갔던 도서관은 학교 학식보다는 좀 작아도 꽤나 넓었는데, 여긴 일곱 개 남짓한 테이블이 전부다. 그래도 떡볶이며 돈까스며 김밥이며, 웬만한 건 다 판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언젠가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빌리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 꿈을 이루었다. 요즘 심해 동물에 빠져있는 아들이 집에 있는 심해 동물 책은 이제 많이 봤다며 새로운 책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반가워서 얼른 ‘주말에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오자’고 했다.

열람실에 있는 컴퓨터로 심해 동물 책이 어디있는지 검색하는 사이, 아들은 스스로 가서 바다 동물 책을 찾아 왔다. 이제 막 만으로 네 살이 된 아들은 조금씩 한글을 읽는다. 다 심해 동물과 바다 동물을 많이 본 탓이다. ‘심해갯민숭달팽이’나 ‘스파르쿠스두팔빗해파리’ 같은 어려워 보이는 글자도 척척 읽는다. 남자아이들은 공룡이나 물고기, 곤충 이름으로 한글을 뗀다더니 과연 그런가 보다.

심해 동물 책을 두 권 빌리고 아이들이 아빠와 지하 매점에서 간식을 먹는 사이 후다닥 2층 일반열람실에서 내가 읽을 책을 빌렸다. 책은 보통 신간에서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 인터넷 서점의 MD 추천보다 도서관 사서의 추천이 훨씬 믿을 만하기 때문에, 책을 살 때는 꼭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에서 빌려 읽고 구매한다. 인터넷 서점의 신간 추천은(대부분 광고라 그런지) 실패 확률 70%였다.


이제 아이와 함께 책을 빌려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더 이상 혼자 평일에 짬을 내어 후다닥 책을 빌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 인문서 몇 권과 헤밍웨이의 소설을 빌려 지하 매점으로 내려왔더니 아들이 젤리를 다 먹고 빌린 책을 펼쳐 보고 있었다.

이건 흡혈오징어, 이건…

하면서 열심히 생물 이름을 읽고 있다. 그저 티니핑과 공주에만 관심 있는 딸은 보석 반지 사탕을 빨면서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다. 남편은 무슨 책을 그렇게 많이 빌렸냐고 한다.

어렸을 땐 내가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거창한 작품을 써내는 대문호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소소한 행복으로 일상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든 세상이다. 행복은 찾기 어렵지만 불행은 너무도 쉽게 찾아 오니까.

좋아하는 간식을 먹고 좋아하는 책을 보고, 아이 같은 단순한 행복감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내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발행의 변(辨)

: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제비처럼 소소한 일상 소식을 나르는 매거진. 종종 하잘것없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주제로 짧은 글을 쓰지만, 가끔 이렇게 하나의 주제로 조금 긴 글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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