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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비 - 열아홉 번째 소식

단수/새 프라이팬/JUDY AND MARY-散歩道

by 릴리리

[오늘의 스토리]

드디어 단수가 됐다. 토요일부터 100톤 이상 저수조를 가진 아파트 물 공급이 끊겼고(부족한 물은 급수차로 직접 공급한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물 보유량이 넉넉했는지 주말동안 문제없이 쓰고 지난 밤부터 야간 단수에 들어갔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단수인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7시인데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아파트 설립 이래 단수는 처음이라 펌프 설정에 오류가 있어 가동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8시 무렵부터는 정상적으로 물이 나왔다. 갑자기 단수될 상황에 대비에 욕조에 물을 받아 놓았는데, 하얀 욕조에 담긴 수돗물이 파란색으로 보여 왜 그런가 찾아보니 녹물 방지를 위해 동(구리)관을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물에 녹아있던 동 이온이 비누나 물때의 지방산과 반응하면 청색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다섯 살 아들이 “왜 물이 파래요?” 물어봤을 때 “글쎄, 왜 그럴까.“하고 대답했었는데, 이제 붙잡고 확실히 얘기해줘야겠다. 응, 아파트 배수관이 구리로 만들어져서 그래. 그럼 구리가 뭐냐고 묻겠지. 미리 구리라는 물질에 대해 대답할 수 있도록 찾아놔야겠다. 아이를 키우면 지식이 함께 늘어간다.


강릉은 비 소식이 있어도 개미오줌만큼 찔끔 오고 맑았다 흐렸다 하는 날씨를 반복하고 있다. 근처 도암댐 물을 방류하기로 결정났다. 도암댐 뉴스에 3천만 톤 물이 있는데 왜 안 쓰냐고 욕하는 댓글을 많이 봤는데, 강릉 시민들은 이미 과거 도암댐 발전 방류로 남대천 생태계가 파괴되어 심한 악취 등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도암댐의 물은 수원지 자체가 다르고, 평창의 많은 목장들과 골프장, 스키장 등의 폐수가 그대로 흘러 들어가 있다. 물론 정수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그 물을 겪어본 강릉 사람들의 거부감을 설득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오염된 환경은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그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은 누구인가? 결국 강릉 시민들이다. 그러니까 단편적인 뉴스만 보고 욕하는 건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나도 여기 이주해온 외지인이라 도암댐 방류 당시 일을 어르신들과 전문가의 기고문을 통해서만 접했지만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재난상황은 누구나 처할 수 있는, 개개인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40년을 살면서 이렇게 간절히 비가 오기를 기다리기는 처음이다. 부디 이제 대비를 잘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이지지 않기를 바란다.

욕조에 받아놓은 물. 수돗물은 파랗다

[오늘의 물건]

새 프라이팬을 샀다. 20센티미터짜리 작은 프라이팬은 달걀프라이를 두 개 정도 굽거나 토마토와 각종 채소를 썰어넣은 두꺼운 오믈렛을 부치거나 할 때 안성맞춤이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의 유래는 (아마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경기도 안성에서 비롯되었다. ‘안성에서 유기를 주문해 만든 것과 같다’는 소리로, 어떤 사물이나 상황이 맞춘 것처럼 딱 들어맞게 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안성의 놋그릇은 예로부터 튼튼하고 좋기로 유명했다는데, 놋그릇은 은근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일단 식기세척기에 돌리면 안 된다. 거의 모든 설거지를 ‘식세기 이모님‘이 해주는 요즘엔 맞지 않는 물건이다. 그래서 선물받은 방짜 수저나 그릇은 그릇장 안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다.

코팅 프라이팬은 특별한 장인정신도 자랑할 만한 역사도 없지만(대신 자랑할 만한 코팅 기술은 있을듯) 하루에도 몇 번씩 쓰는 물건이다. 아무리 좋은 코팅을 했다고 해도 2-3년 쓰면 새 걸로 교체해야 한다. 진짜 좋은 물건이란 게 뭘까, 프라이팬과 방짜유기를 보며 생각한다.

새로 산 프라이팬

[오늘의 음악]

散歩道 - JUDY AND MARY

중고등학교 때 일본음악에 빠져 살았다. 비주얼록부터 아이돌 노래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는데, 주디 앤드 마리는 지금도 정말 좋아한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많은 밴드들이 해체 후 다시 재결합하는 과정을 겪었는데, 덕분에 성인이 되어 좋은 라이브 공연을 많이 봤다. 이른바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주디앤드마리는 재결합하지 않았다. 각자 솔로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어 앞으로도 요원해 보인다. 스페셜 무대라도 한 번쯤 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모든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는 유일한 아티스트인데, 단 한 번도 못 보는 건 너무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고른 음악은 많고 많은 주디앤드마리 곡 중에서도 ‘산책길(散歩道)’.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냄새가 났던 대우자동차 판매부지에서 열렸던 펜타포트에 가면서, 근처 숙소에서 행사장까지 드넓은 공터 옆 도보를 걸어가며 불렀던 노래다. 그 땐 송도가 개발되기 전이라 근방이 죄다 허허벌판에 이름모를 들풀이 가득했었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그 때 생각이 난다.

JUDY AND MARY의 <POP LIFE> 앨범 커버아트(1998 Sony Music Entertainment(Japan) Inc.)

발행의 변(辨)

: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제비처럼 소소한 일상 소식을 나르는 매거진. 종종 하잘것없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금 주 5회 발행. 공휴일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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