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시켜준 귤/여행 노트/Vaundy-恋風邪にのせて
소소한 제비 스물여섯 번째 소식
[오늘의 스토리]
엄마가 나홀로 육아 중인 필자를 위해 귤을 한 박스 시켜주셨다. 어릴 때 겨울이 되면 귤을 박스 째로 가져다 놓고 손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곤 했었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과일을 꼽자면 단연코 귤이다.
귤을 까는 나만의 스킬이 있다. 꼭지 바로 옆을 엄지손톱으로 살짝 뜯은 다음, 귤을 쥔 손의 엄지 손가락으로 밀듯이 벗겨낸다. 그러면 사과 껍질을 끊어지지 않게 깎는 것처럼 귤 껍질을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게 벗겨낼 수 있다. 쓰레기를 처리하기도 간편하고, 먹는 장소가 바깥이라면 깐 귤을 귤껍질 위에 올려 접시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아주 편한데 의외로 이렇게 까먹지 않는 사람이 많아 놀랐다. 꼭 해보시길 바란다.
엄마가 보내주신 하우스 감귤은 맛있었다. 참, 감귤과 밀감은 자주 혼용되어 쓰이는데, 엄밀히 말해서 감귤이란 유자, 탱자, 귤 등을 총칭하는 하나의 카테고리고 밀감은 우리가 주로 먹는 귤의 종류라고 한다. 중국에서 건너왔지만 일본에서 개량되어 우리나라로 수입되었다고.
어렸을 때는 ‘귤’이 우리말이고 ‘밀감’이 한자어인줄 알았었다. ‘귤’이라는 한자어가 있는 걸 알고 꽤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뭘 찾아보려면 백과사전을 뒤져야 했으니까, 잘 몰랐던 것도 당연하다. 지금은 손가락만 까딱하면 어디서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좋은 세상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귤을 먹으며 생각한다.
[오늘의 물건]
옷 입는 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타일링 하는 걸 좋아한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항상 그 날의 착장을 그림으로 그려본다. 거기에 맞춰서 짐을 싼다. 대충 입고 나가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여행이라면 옷을 가져가기 좀 수월하지만, 해외여행이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자주 가던 곳이라면 그나마 날씨가 어떨지 대강 짐작이 되는데, 기후가 다르거나 하면 어느 정도 계절감에 맞춰 옷을 가져가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항상 추우면 위에 아우터를 덧입거나 더우면 벗을 수 있도록 스타일링을 한다. 이게 꽤 생각을 많이 해야 해서(양말과 속옷, 신발까지 고려해야 한다) 여러 변수를 생각하다 보면 조금 지치는데, 좋아하는 일이라 그만둘 수 없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아이들의 착장까지 생각해야 돼서 더욱 할 일이 많아졌다. 늘 시밀러룩을 입을 수는 없지만 너무 무드가 어긋나지는 않도록 각자의 옷을 스타일링한다. 가끔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생각한다. 요리사이자 스타일리스트이자 때로는 헤어 디자이너도 되고 선생님도 되고, 그걸 하나로 칭하는 단어가 ‘엄마’가 아닐까.
그래서 ‘오늘의 물건’은 여행 갈 때마다 쓰는 작은 노트. 여행 떠나기 전에 착장도 그리고 가서는 일기도 쓰고 산 물건 영수증도 붙인다.
[오늘의 음악]
恋風邪にのせて - Vaundy
오늘은 비교적 흥겨운 바운디의 ‘사랑 감기에 실어서(코이카제니 노세테)’를 선곡해봤다. ‘바람’과 ‘감기’의 발음이 같다는 것에서 만든, 일종의 말장난 같은 제목에서 피식 웃게 되는데, 젊은 날의 사랑과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가사가 참 좋다. 검색해보면 우리 말로 해석한 포스트가 많이 나오니, 꼭 가사를 찾아 보길 권한다. 나 어릴 적엔 PC통신에서 ‘가/독/해’ 찾아 보고 그랬는데, 혹시 아는 분이 계실지? 소싯적 ‘일음’ 좀 들어봤다는 분들이라면 아마 아실 거라 생각한다.
이제 ‘시시한 사랑’을 할 일이 없는 아줌마는 스무 살을 추억하며 이 노래를 듣는다.
발행의 변(辨)
: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제비처럼 소소한 일상 소식을 나르는 매거진. 종종 하잘것없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금 주 5회 발행. 공휴일은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