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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꿈꾸며

소소한 제비 스물일곱 번째 소식

by 릴리리

한때 ‘자동차 키는 돌려야 제맛’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2010년 탔던 첫 차는 한창 스마트키가 붐이었던 시기였음에도 굳이 아래 사양의 ‘돌리는 키’로 구입했다. 그리고 그 키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똑 부러지고 말았다(아무래도 불량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자동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거는 시대가 됐다. 잘 인식이 되지 않아 몇 번이나 문 손잡이에 스마트폰을 붙였다 뗐다 하는 모습을 보면 약간 측은한 감정마저 들지만, 이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자동차도 몰 수 있다니 새삼스레 격세지감을 느낀다.

약간 느린 것을 좋아하는 나는, 여전히 스마트키를 가지고 다닌다. 이제 매번 어지러운 가방 속을 뒤져 자동차 키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가방 속에 스마트키는 들어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예쁜 키링을 달기 위해서’.


최근 몇 년 사이 키링의 대유행으로 가방에도 바지고리에도 가지각색의 키링을 다는 것이 주류 패션이 되었는데,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가방에 무언가를 주렁주렁 다는 걸 좋아했던 나로서는 ‘나만 좋아하던 것을 빼앗긴 기분‘이라 약간 언짢으면서도 너무 예쁘고 귀여운 키링이 많아 행복한, 그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도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달고 싶은 예쁜 키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건 참으로 즐겁다.


그러고보면 해외에서는 아직도 많이들 아날로그 열쇠를 사용한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집집마다 모두 디지털 도어락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그 넓은 집을 열쇠 하나로 잠근다고 생각하면 왠지 이 작은 열쇠 하나로 괜찮나 싶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디지털도어락 정착의 역사가 그리 길진 않다. 어릴 적 살던 주택도 열쇠로 문을 잠갔고, 아파트에 살던 친구도 집에 들어가기 전에 화분 밑에 숨겨놓은 열쇠를 찾아 열고 들어갔으니 말이다.


실제로 디지털 도어락은 2005년까지만 해도 고급 신축아파트에만 설치되던 것이었다고 한다. 2006년부터는 신축아파트라면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해, 2010년대에는 신축 빌라에도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옵션이 되었다고. 디지털 도어락의 전국적인 보급은 20년이 채 못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시골 단층짜리 주택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빠른 것 같다. ‘디지털’, ‘최첨단’, ‘신식’이 붙으면 ‘빨리 받아 들이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디지털 도어락은 압도적으로 편리하니까, 많이 보급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왜 아직도 불편하게 열쇠를 들고 다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반면 젠지들이 카세트 테이프와 LP에 열광하고 뜨개질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빠르고 편리한 것이 언제나 힙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일상이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느리고 잔잔한 여유를 찾고 싶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CD장 위의 먼지를 턴다. 애플뮤직으로 마야 호크의 ‘Kamikaze Comic’을 들으며.

그림은 챗GTP기 그려주었다.

발행의 변(辨)

: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제비처럼 소소한 일상 소식을 나르는 매거진. 종종 하잘것없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금 주 5회 발행. 공휴일은 쉬어갑니다.

가끔 긴 글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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