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수학을 다 못 풀어서 좀 더 풀다가 갈게요! 있다가 전화하면 데리러 와주실 수 있어요?"
"그래! 알았어."
그렇게 무심코 전화를 끊었다. 나는 평일에 쉬기 때문에 평일 쉬는 날은 아들의 등하교를 시켜주고 있다.전화를 끊은 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공부를 못해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건가?, 아니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그런 건가?' 내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집으로 오면서물어보았다.
"아들! 아들만 나머지 공부한 거야? 다른 친구들은 다 먼저 집에 갔어?"
"아니요. 두 명 더 있었어요!"
"그래? 그러면 집에 간 친구들은 수학을 다 풀어서 간 거야?"
"네!"
기분이 상했다. 나를 닮은 것 같아서.. 나는 학창 시절에 수학을 정말 못했다. 분명히 다 문제를 풀었고 보기에 있는 답을 다 썼지만 늘 틀렸던 것 같다. 이런 건 닮지 않았으면 했는데, 수학을 못 한다는 것으로 아빠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나중에 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들이 수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풀 수 있는 단순한 문제도 깊게 생각하면서 고민을 하다 보니 풀이 시간이 늦어져 그러는 것이지 못 푸는 것이 아니라고 했고, 이해가 될 때까지 선생님께 계속 물어본다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맑은하늘처럼 네 꿈에도 구름한점 없었으면..>
그런데, 난 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나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결혼 전부터 생각했던 나의 부모로서의 역할 지론은 많은 경험을 통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주고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도 여느 부모와 다름없이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들이 걱정되었으며 받아쓰기 점수가 중요해지기 시작했고 수학 점수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이 운동만 하고공부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에 마음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축구클럽을 다니면서 시합 때 지면 울면서 연습을 반복하고 기술을 익히기 위해 집에서 조차 축구공을 발바닥으로 굴리며 걸어 다니거나 밥 먹으면서도 식탁 밑에서 발바닥으로 공을 굴리는 모습들을 보았는데 상대적으로 수학 문제를 틀린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집요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좋아하는 영어는 그 날 배운 건 스스로 노래로 만들어 흥얼거리며 다니기도 한다.
아내도 내심 걱정이 되었는지, 아들에게 '수학 공부 좀 해야 되지 않겠니?'라고 말을 해보지만 아들의 대답은 어릴 적부터 내가 해준 말 덕분에 항상 똑같다.
"아빠가 제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된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수학 공부가 싫은 건 아니에요!"
아들의 애매한 대답에 아내가 나를 노려보면, 조심스럽게 나는 말한다.
"문과야.. 문과 체질이라서 그래.. 예체능인가?"
아내의 눈초리가 조금 따갑긴 하지만 아들을 믿으니까.. 괜찮다.
솔직히 확신이 서지는 않아도 늘 확신을 가지고 싶다. 어차피 나와 아내는 부모 역할이처음이니까..
나는 늘 확실하게 아들에게만은 말해주는 것이 있다.
'아빠는 너의 꿈을 항상 응원한다'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꼭 되고 말겠다며 눈만 뜨면 나에게 축구 기술 이야기와 유명 유럽리그 선수 이적 현황 등을 이야기하며 좋아하는 아들을 보면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야!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늘 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약간의 공허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로서의 긍정적인 이중적 교육의 잣대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이 있다는 건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굳이 이러한 사실을 아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싶지 않다. 어릴 적 꿈은 최대한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그 꿈이 노력해도 안될 수 있다는 현실로 인해 꿈을 위한 도전과 노력을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훗날 아들이 실패를 하고 좌절하게 되더라도, 꿈을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그 꿈은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던 것이고 더 크게 성장할 아들의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의 뒤에는 항상 아빠가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래>
지금의 나는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힘들어 아등바등 대는 현실에 서 있지만, 훗날 아들이 성인이 되어 큰 성공도, 많은 재산을 축적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린 시절 많은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노력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었고,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부모로 인해 행복했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