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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n 26. 2023

브런치 초기에 다작을 했습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제가 좀 들떠 있었나 봅니다. 지난 6년 우울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우울이 줄었습니다. 남편도 제가 좀 달라졌다고 합니다.

  

  브런치를 하면서 처음에 엄청나게 글을 썼다. 정말 오티움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냥 즐거웠다. 특별한 취미나 즐거움이 없었던 내 인생에 한 줄기 기쁨이 되어준 것이 글쓰기였다.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 상을 타는 아이들을 참 부러워하곤 했다.


   다작을 통해 뭔가 하고 있다는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은 뭔가 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내 일과 업을 사랑하지만 27년 반복된 일들은 나에게 큰 기쁨이나 성취를 주지 못했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고 발행하면서 다른 영역의 업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가게를 차리고 나만의 가게에서 팔 물건들을 정리하고 진열하고 다듬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잘 팔릴지 고민하고 디스플레이하는 듯한 느낌. 


  필력이 미진한 관계로 일기 쓰듯 글을 썼지만 일기쓰기와 다른 브런치만의 글쓰기 맛이 있었다. 단순 일기 쓰기는 하루 일상을 서술하고 감정을 여과 없이 쓰고, 때론 아들에 대한 원망을 한가득 적었다. 거기엔 필수로 남편에 대한 원망도 따라붙었다. 부부로 연을 맺고 부모로서 자식을 거느리게 되었으니 양육의 책임은 남편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에 다녀서 물리적 시간이 현저하게 부족한 남편을 원망해봤자 소용없긴 했지만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면 그 원망은 나에게로 다 쏟아지기에 늘 원망 가득한 글들이 일기장엔 한가득이다. 물론 나의 부족함도 자책했다.


  아직 일기쓰기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브런치 글쓰기를 진짜 나만 볼 일기장의 글처럼 쓸 수 없는 일이었다. 일기를 쓸 때는 정말 아들에 대한 미움만 한가득 써댔다. 그리고 일어난 사건 위주의 기술이었다. 마치 나중에 아이한테 '니가 나 이렇게 애먹였다. 옛다, 니가 했던 일을 봐라' 라고 일기장을 던져줄 기세로 말이다. 일기처럼 사건을 하나 하나 적고 원망만 잔뜩 늘어놓을까봐 아들에 대한 일을 쓰는 게 맞나 늘 노심초사하면서도 결국은 아들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쓰긴 했지만 말이다.

  

 브런치에 아들에 대해 쓰는 것은 일기와는 분명 달랐다. 아들과 있었던 일에 대해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머리 속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러면서 아들을 온전히 제 삼자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이 소설 속 인물이 된 느낌이었다. 소설 속 인물은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가족보단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는가. 아들을 그렇게 좀 객관화된 입장으로 바라보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로서 양육태도도 남들이 내 글을 읽게 된다고 생각하니 좀 더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정신 없이 써댔기에 초창기 무슨 글을 썼는지 목차를 보지 않으면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무슨 글을 썼건 간에 글을 쓰면서 아들에게 집착하던 내 관심사는 글쓰기로 조금 옮겨왔다. 아마 이것이 내 마음도 아들의 마음도 다 편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다작이 아들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조금 멀어지게 만들었다.

< 아래는 초기에 다독과 구독자에 대한 배려라는 제목으로 쓴 글입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버릴 줄 아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만 초기에 썼던 소중한 글. 차마 지울 수가 없어서 남겨둡니다.>  


 사실 구독자는 저에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많으면 좋겠지요. 진심으로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중간고사에서 20점 받던 아이가 기말고사에서 30점을 받았다고 의미를 부여하거나 기뻐할 수 없듯이, 지금 제 상황에서 구독자가 늘고 줄고는 의미는 없습니다.(물론 구독해 주시는 분들에게는 깊은 감사드립니다.)

 

 구독을 취소하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1. 글이 본인 취향이 아니다.

  사실 저는 아들만으로도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 깊은 사유에서 나온 글을 쓸 여유는 없습니다. 또한 저의 역량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변잡기적인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2. 글에서 정보를 얻고 사유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된다.

  위에서도 말했듯 제 글은 신변잡기적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교직생활 이야기도 한계가 있는 이야기들 뿐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우울을 떨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정도로 만족합니다. 더 좋은 글을 쓰고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3. 글이 흥미가 있어야 된다.

  저는 그리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라 흥미 있고 재미있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어쩌겠나요.


4. 독자에 대한 배려심 부족

  사실 이게 제일 크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잡생각이 줄어들고 무기력이 줄어드는 걸 보면서 혼자서, 정말 혼자서 신났습니다. 하루에 서너 편 써대며 발행을 누릅니다.

  구독하시는 분들 괴로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시로 울리는 알람.

  완전 배려심 부족입니다. 제 감정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실 분들 있으셨을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글은 집에 가서 애들 밥 먹이고 씁니다. 안아주기 시리즈는 아침에 쓰긴 하지만요. 저 선생은 일은 안 하나 생각하시는 분 있을까 봐 살짝 말씀드립니다.)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배려입니다.

  "배려는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랍니다. 배려가 어려운 게 아니에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 친구한테 준비물을 잘 빌려 주는 것. 급식실에서 조용히 줄 서 있어 주는 것. 지각하지 않고 학교에 와서 독서 시간에 조용히 책 읽어주는 것. 주변 사람에게 돈 안 들이고 이런 큰 선물을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겠죠?"


  이런 저였는데 우리 반 00 이처럼 행동했습니다. 00 이는 공부 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해야 될 말들을 그냥 바로 뱉어버립니다. 힘듭니다. 자제시키기가. ONLY 자기 생각뿐.

  제가 그러고 있었네요.



   배려하는 나무 향기가 되겠습니다.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오늘 외부 강사 수업이 있는 걸 모르고 제 수업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외부 강사 수업이 2시간이나 되네요. 갑자기 기쁩니다. 그 시간에 짬을 내서 독자님들께 배려심 부족에 대한 사과를 드립니다. 방금 밥을 먹고 와서 발행을 누르려고 합니다. 김치볶음밥에 김치 반찬이 나온 걸 보며 아들을 떠올렸습니다. 아들은 좀 있으면 점심을 먹겠지요. 조퇴를 안 하고 학교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이렇게 온통 아들 생각뿐이다가 요즘은 브런치스토리로 살짝 생각이 옮겨갔습니다.

   구독자님들 죄송합니다. 저의 만행을 당분간은 귀엽게(?) 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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