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로 살만 찌고 웃음이 걷혀 가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학교에 가면 귀여운 아이들의 말과 생활이 기쁨을 주긴 했으나 내 생활은 전반적으로 우울기가 가득했다. 아들이 반항하면 김치와 밥만 먹어대며 폭식을 했고 고스란히 살로 갔다. 고지혈증에 당뇨 수치도 좋지 않게 되었다. 자식을 키운다는 게 기쁨이 되어야 하건만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식 걱정에 내 몸이 어떻게 되는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교실이란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싫어졌다. 누군가를 만나면 아들 이야기를 늘어놓고 한탄할 것 같아 두려웠다. 사교적이진 않지만 사람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사귀는 것도 좋아하고 누군가와 정을 나누는 게 즐거웠던 나는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소외되지 않으려고 남들이 다 피하는 부장을 하기까지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내가 이상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랬던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며 웃기 시작했다.익명의 공간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풀며 위로받는 것이 좋았다.
글을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할 때 작가님들은 힘이 되어 주었다. 첫 번째는 이숲오 작가님. 독자가 몇 명 되지도 않고 댓글도 전무하던 시절 다작에 대한 부끄러움을 털어놓는 글에서 힘을 주셨다. 사실 그 글을 쓰면서 글을 그만 써야 될까 고민을 엄청 했었는데 작가님의 1호 댓글은 큰 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독자가 어느 정도 늘었다.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작가님도 생겼다. 그분들의 댓글은 항상 힘이 되고 날 웃게 한다. 40 넘어 고향을 떠나왔다. 새로운 지역에서 다시 인간관계를 맺기가 쉽진 않았지만 새로운 인연들이 생겼다. 그것처럼 브런치 공간에서 또 다른 인연의 끈들이 생긴 것이다. 만날 일도 없고 옛 친구들처럼 언젠가 끊어질 인연들이란 것도 안다. 그렇지만 브런치 공간 안에 머무르는 동안은 함께 할 글동지들이어서 이 분들의 글을 보면 기쁘고 응원하고 싶어 진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서 더욱 좋은 관계이고, 글을 쓰는 분 들이어서 댓글마저도 정이 넘치고 문학 소설 같다. 새로운 인연의 힘은 그렇게 나를 웃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