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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n 28. 2023

브런치 라이킷

평가에서 자유로운 인생이 되었으면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고 궁금한 것이 생겼다. 아직 브런치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구독하시는 분이 라이킷을 해주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어마무시한 구독자를 거느리고 계시면서 내 브런치를 구독하지 않으시는 분이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라이킷을 해주실 때는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궁금증이 오른다.


  오래 생각해 봤지만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그냥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봤다.

  1. 수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는 건 필력이 좋으신 거고, 필력이 좋다는 건 책도 많이 읽으셨다는 뜻이다.

  2. 책을 많이 읽으셨다면 글을 읽는 속도가 남달라서 실시간 글을 빨리빨리 읽으실 수 있다.

  3. 실시간 뜨는 글들이 비록 일기 같은 글일지라도 작가님들의 글쓰기에 작은 영감이라도 줄 수 있어서 읽으시는 거다.

  4.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은 다작보단 다독을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은 모르겠다. 브런치만 알고 라이킷을 누르시는 분만 알 것이다. 정말 모르겠다.

  

  오늘은 수업공개를 무사히 마쳤다. 27년 동안 수많은 공개수업을 해왔지만 항상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건 두려움과 긴장이다.

  어릴 적 통지표의 수, 우, 미, 양, 가부터 오늘날 성적표의 서술형 평가까지 방법만 바뀌었을 뿐 학창 시절엔 끝도 없는 평가를 받아야 되고 실망해야 되고 칭찬도 받고 비난도 받는다. 그리고 성인이 되기 이전엔 그 평가 결과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만 같고 자신을 규정짓는 유일한 잣대가 되는 것 같아서 자존감도 내려가고 우울과 좌절을 겪기도 한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 또 다른 경쟁 상대가 있어서 항상 비교당하고 평가당하며, 하위권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 내 인생은 이미 글렀어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결론 내리며 포기를 하게 만든다.


  어른이 된다고 평가에서 자유롭지도 않은 게 현실이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나 같은 선생의 경우는 수업공개를 통해 평가받고 이동점수나 승진점수를 따기 위해서 어떤 대회에 참가하면 또 그 결과물로 평가를 받는다. 다른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연말이면 승진고과를 받고 그게 연봉까지 좌우한다. 비슷비슷하게 노력하고 일한 것 같은데 평가 결과가 한 사람의 살아온 결과를 모두 대변하는 것만 같아 참 슬프기도 하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고 다르랴. 각자의 자리와 역할에서 또 비교와 평가를 당한다. 며느리 자리면 다른 집 며느리와 비교당하고 평가당하며 또 며느리들도 다른 집 시어머니와 나의 시어머니를 비교하며 평가한다.


  그리고 결혼에 있어서도 그 평가나 비교는 자유로울 수 없다. 처녀 적 중매를 서시려는 분들이 많았다. 그중 떠오르는 한 건은 모 교육장 아들과 선을 보라는 동학년 선생님의 권유였다. 알겠습니다 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 뒤로 아무런 이야기가 없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 교육장은 내 성적부터 우리 집 뒷조사까지 다하셨고, 우리 집이 결격사유였다.

  나는 그냥 나란 인간일 뿐인데 부모, 주변 환경 모든 게 나란 존재를 규정짓는 평가의 요소가 된다.


  삶이 항상 평가의 연속이라 언제쯤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평가는 타당성, 신뢰도, 객관성 등을 갖추고 있어야 되는데 우리가 살면서 받는 평가들이 과연 그것들을 다 충족시키는 평가일까?


  이러면서 나도 며느리를 보게 될 때 평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포기한 큰아들은 어쩔 수 없지만 둘째의 성적표를 들고 10점, 20점 차이로 둘째의 학교 생활의 성실성에 대해서 잔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죽음도 평가에서 자유로울까? 장례식장을 가보면 화환이 적은 집은 뭔가 허전하다. 화환이 장례식장 입구부터 남의 장례식장까지 침범하는 집을 보면 와 대단한 집안의 대단한 사람이 돌아가셨나 보다는 생각을 한다. 화환의 개수와 화환에 적힌 사람들의 직업이나 이름으로 돌아가신 분마저 또 평가의 대상이 된다.

  쓰다 보니 죽을 때까지도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보통 사람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라이킷에 대한 것이었다. 생각이 정리가 안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렸지만 결국 평가에 대한 생각이다.

  인스타의 하트, 페북의 좋아요, 브런치의 라이킷 모두 평가다. 라이킷을 해 주시면 고맙다. 라이킷을 받았다고 해서 정말 내가 잘 썼구나라고 판단을 하면 안된다는 것도 안다.

 어쨌든 누군가의 글을 읽고 호의를 표한다는 건 사이버 공간에서 정을 나누는 방법의 하나고 내가 모르는 이에게 베풀 수 있는 돈 안 드는 배려일 것이다.


  아침에 슬픈 글을 하나 읽었다. 감정의 선이 그분 마음에까지 미치면서 라이킷을 누르려는데 잠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이런 슬픈 글에 라이킷이라니, 대체 뭐가 라이킷인 걸까?

 차마 못 누르고 주저하다가 꾹 누르긴 했지만 라이킷이란 단어, 그냥 마구 쓰기에는 조심스러운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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