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입고 온 롱패딩을 비닐백에 돌돌 감아 넣고 히드로 공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누구에게나 막연한 꿈이 있다. 시기적인 막연함일 수도, 경제적인 막연함일 수도, 아니면 태도적인 막연함일 수도 있다. 어떤 종류일지는 몰라도 시간, 돈, 그리고 열정이 우리 삶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퍼즐 조각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내가 전역 직후 영국행을 결심한 것도 이 삼박자가 맞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곤 하면 주로 시기적 막연함을 담은 항목을 썼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지나치게 단기적인 목표였다.
물론 버킷리스트에 우열은 없다. 언젠가 제주도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분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삶이 힘들고 나 자신을 잘 모르겠을 때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라고. 거창할 필요도, 장기적일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자신은 '매일 아침 하늘 바라보기'와 같은 항목도 있다며, 버킷리스트가 스스로의 루틴을 만들고 객관적인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애석하게도 어릴 적 내가 그런 깊은 생각까지 했을 리는 만무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항목들을 특별한 생각 없이 적어 내려간 기억이 짙다. 그럼에도 내 버킷리스트에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한 '유독 막연하지 않은' 항목이 있었으니, 좋아하는 축구팀 아스날 경기 직관이었다.
언제 어디서 버킷리스트를 적더라도 아스날 경기 직관은 최상단에 있었다. 동시에 유일하게 시기적 확실성과 장기성이 드러났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아스날 경기를 보러 영국으로 떠날 것이라는 다짐. 그 다짐이 11년 차를 맞은 스물세 살 가을, 그리고 전역 4달 전. 그렇게 나는 영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영국에서 머문 17일 동안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기쁜 순간들을 만끽했다.
이 책은 내가 부대 안에서 17일간의 영국 축구 여행을 계획하며 알아낸 여러 팁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여행을 직접 다녀와보며 느낀 디테일을 추가했다.
영국 축구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
특히 전역을 앞두고 영국행을 계획하는 나 같은 축구팬들에게 소소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