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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Aug 15. 2024

XX 년 5월 2일

자려고 누우면

어릴 때 혼자 집에서 잘 때면 불쑥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주변이 고요해지면 밝을 때는 들리지 않았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냉장고 돌아가는 기계음처럼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아주 작은 소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한창 유행하던 홍콩할머니귀신같은 도시괴담이 한몫했겠지.


성인이 되서까지 언니하고 한 침대를 썼다. 언니는 열이 많고, 나는 몸이 차가운 편이라 한 여름을 빼고는 등을 돌리고 자는 언니의 포동포동한 허리를 끌어안고 잤다. 겨울이면 수족냉증으로 얼음장 같은 발을 언니 다리사이에 살포시 넣다가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언니 하고 같이 지낸 덕분인지 놀러 가서 친구들과 한 침대를 써도 불편하지 몰랐다. 같이 자는 게 불편하다고 바닥에 따로 이불 깔고 자는 친구들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나는 언니 하고 함께 자던 침대보다 더 큰 침대에서 혼자 누워있다. 자려고 누우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악몽도 꾸지 않고 잠에 빠져버린다. 나이가 들면서 무서운 마음도 같이 늙어버린 걸까. 늦은 밤 엄마하고 전화통화를 하며, 예전에는 혼자 자는 게 무서웠는데 지금은 하나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잠을 너무 잘 잔다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자신에게 맞는 집이 있다고, 엄마도 이사오기 전 집에서 잘 때는 왠지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사는 집에선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이다. 엄마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가슴이 뻐근해진다. 오늘 밤에도 잠에 푹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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