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어야 해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독립 전에는 집에서 먹고 쓰는 건 공짜였는데, 독립을 하고 나니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생기는 것이 없다. 먹는 것부터 씻는 물, 밥 짓는 가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을 돌리는 전기까지 모두 말이다. 내가 먹고 쓰는 양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나는 혼자 사니까.
독립을 하고 두 달은 너무 즐거웠다. 부족한 물건을 채우고, 정리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썼다. 현관문에 달 풍경을 고르고, 침대 맡에 놓을 액자를 맞췄다. 지저분해 보이는 화장대를 정리할 선반을 샀다.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었지만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랐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내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나의 사회적 위치는 프리랜서, 솔직하게 말하면 반백수다. 2년 전 회사를 퇴사한 이후로 의도치 않게 느슨한 삶을 살고 있다.
나의 퇴사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됐다. 결심까지 가볍지는 않았지만. 이전까지 퇴사 이후의 시간은 오직 이직을 위해서였다. 퇴사기간도 길어야 3개월을 넘기지 않았고, 그 시간도 이력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며 보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처음부터 이직을 아닌 쉼을 위해,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고 마음먹었다. 마냥 쉬는 건 또 내 성격이 아니라 두 가지만은 해내자고 목표를 정했다. 하나는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나름 의미를 가지며 쉴 수 있지 않을까.
책을 만드는 것에 큰 목표는 없었다. 서른 초반에 우연히 글을 쓰는 취미를 갖게 됐고, 그 글들의 결과물을 갖고 싶었다. 낱장으로 흩어진 생각이 아닌 꼴을 갖춘, 번듯하게 보이는 책으로 말이다. 이미 독립출판 책 만들기 수업을 들어 놨던 터라 퇴사 후 집중해야 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퇴사 후 그 해 11월 작은 책을 손에 넣었다. 서른의 내가 쓴 글이지만 나의 30여 년이 담긴 소중한 책이 되었다. 무난하게 첫 번째 목표를 이뤘다.
자격증 취득은 한 분야에서 10년 가까이 일해 온 나에게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과제 같았다. 주말도 없이 시험 준비한 지 3년이 넘은 장수생 생활을 이제 졸업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지만 퇴사를 하고도 몇 번의 시험에 낙방했다. 이대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이 자격증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수차례 하며 이사하기 2주 전에 겨우겨우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한 달 뒤 독립한 집에서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어느 때보다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치렀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합격이라니. 꺾이지 않은 마음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많이 늦었지만 두 번째 목표도 이루게 되었다.
처음 목표했던 두 가지 일을 달성했으니 이제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할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끔은 내 삶이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고민의 지점에서 누군가가 살짝 어느 한쪽으로 밀어주면 여기가 내가 가야 할 길인가 하고 눈치 보며 슬금슬금 걷는 나. 프리랜서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