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야 할 때
이제야 정신을 차려본다. 아프다는 핑계로 며칠간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다가 더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사실 독립하고 나니 뭐라고 할 사람이 주변에 없기도 하고. 이게 혼자 사는 것의 장점인가?)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고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나이이기에 적당히 구르다 바닥을 딛고 일어나 본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다 그만두고 싶을 때, 스스로를 저 바닥까지 끌고 들어가 괴롭히다가 이만하면 되겠다 싶을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바닥을 치고 나면 이렇게 다시 튀어 오를 동력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일 년에 한두 번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슬럼프 같은 것이랄까.
처음 이런 슬럼프가 찾아온 것은 사회초년생때였을거다.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 경력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할 때었다. 그때를 지나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이 느껴졌던 순간이나 내가 원하는 게 진짜 이게 맞는지 도저히 확신이 들지 않을 때에도 어김없이 슬럼프는 찾아왔다. 사회인이 되기 전에도 분명 비슷한 기분은 느꼈겠지만,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 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쓰나미급 슬럼프. 모든 건 결국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앞으로도 막막할 거고 또 불안하겠지만 다시 괜찮아진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익숙해졌다는 건 절대 아니고.
누군가 그랬는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보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가라고.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 볼 생각이다. 섣불리 결정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인찬스도 이미 사용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올라오는 공고에 꾸준히 지원하는 일만 남았다. 때때로 오는 이 열병을 피할 수 없겠지만, 덜 아프게 또는 더 빨리 내 궤도로 돌아올 수 있도록 건강한 나를 만드는 데도 힘써야겠다.
아프고 나니 날씨가 더워졌다. 집에 가만히 있는데도 땀이 나고 잠깐 걷는 일에도 쉽게 지친다. 기대도 되지 않던 봄을 지나 벌써 여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