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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Aug 12. 2024

XX 년 4월 30일

내가 원하는 공간은

오늘 집에 소파가 도착했다. 쇼파만은 사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버렸다. 사니까 생각보다 훨씬 좋아서 스스로 너무 놀랬다. 도대체 왜 이제야 산 거지?


독립을 꿈꿨을 때 머릿속으로 떠올린 집이 있다. 거실이 있는 집. 정확히는 주방과 거실이 분리된, 거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 있는 집. 방은 어떻게 되든지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런 이유로 원룸은 내 선택지에 없었다. 쥐뿔 가진 것도 없으면서.

그 거실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티브이와 소파는 없다. 대신 책장과 테이블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책장에는 이제껏 내가 모아온 소품들과 내 취향의 책들이 꽂혀있고, 그 앞에 서서 스스로 뿌듯하는 나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그림이다. 그 옆에는 혼자 사용하기 퍽 넓은 테이블이 놓여있다. 마음껏 늘어놓아도 상관없는 테이블에서 작업도 하고, 책도 읽는다. 더불어 테이블이니까 식사도 할 수 있겠지. 혼자 사는 집에 책상과 식탁이 따로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런 공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내 집에는 거실이 있어야만 했다. 거실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독립한 첫 날, 혼자 그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기 까지는.

거실에는 처음 생각한 그대로 책장과 테이블이 놓였다. 한쪽 벽면에는 책장 두개와 수납장을 반대쪽 벽면에는 테이블을. 이사를 마친 첫 날 저녁, 태블릿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생활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아, 나는 밥 먹을 때마다 이런 자세로 먹겠구나. 이럴거면... 그냥 크게 보자. ’

그렇게 티브이는 그 주를 넘기지 않고 수납장 위에 설치되었다. 계획하고 고른 것 만큼이나 딱 맞는 사이즈로 수납장 위에 완벽하게.

그 후로도 테이블 생활은 한동안 계속됐다. 해가 비치는 밝은 거실에서 작업도 하고, 식사도 하며 만족스러운 날들을 보냈다. 손님이 오면 테이블 덕분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쇼파가 있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오래 앉아 있기엔 테이블의 의자는 너무 딱딱했다. 티비를 볼때는 불편함이 배가 되었다. 고민 끝에 크림색 패브릭 소파를 거실에 들여놓기로 했다. 두 발을 쭉 뻗을 수 있는 스툴 까지. 그 덕에 테이블은 부엌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고민은 짧았지만 집에 어울리는 쇼파를 고르는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


이제 나의 거실에는 책장과 티브이와 소파가 있다. 하지만 책장에는 여전히 좋아하는 책들과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의 OST 시디들과 애정이 담긴 작은 소품들이 놓여있고, 창 앞에는 몇년동안 내 책상서랍 속에 묵혀 놓았던 제주도산 모빌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실은 결국 다른 집들과 비슷해 졌지만, 앞으로도 조금씩 나의 취향이 담긴 공간으로 변해 할 것이다. 앞으로도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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