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오래된 폐기 구역은 먼지와 녹슨 철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멀리서 울리는 금속성 울림이 함께 메아리쳤다.
한때 수천 명이 오가던 지하 플랫폼은 이제 음습한 공기와 희미한 전등 아래에서
저항자들의 은신처로 바뀌어 있었다.
벽에는 급히 붙인 전단과 지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드문드문 켜진 조명 아래로 전선을 따라 번쩍이는 불빛이 반딧불처럼 깜박였다.
시끄러운 도시 위와는 달리, 이곳은 감정의 잔해 위에 세워진 유령 도시처럼 느껴졌다.
엘라와 동료들은 낙인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숨기고 있었다.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거리마다 드론의 감시가 깔렸고 시민들의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누군가는 그들을 영웅으로 여겼지만, OZ의 선전에 흔들린 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위험한 감정 테러리스트’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 폐기 구역에 모인 사람들만큼은 달랐다.
감정을 억눌러 온 무게를 누구보다 깊이 체감한 이들이었다.
하린은 긴 테이블 위에 흩어진 자료들을 정리하며, 숨을 고르듯 낮게 말했다.
“우린 흩어지면 안 돼. 시민들을 이어 줄 수 있는 연결망이 필요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각성자들을 찾아야 해.”
류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서면 OZ의 미끼에 걸릴 뿐이야. 드론은 이미 우리 위치를 추적하고 있어.”
“그래서 네트워크가 필요한 거야.” 제로가 낮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직접 모이지 않아도, 서로를 이어 줄 통로를 만들 수 있다면 희망은 있어.
중요한 건, 그 경로가 OZ에 감지되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
엘라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묘한 떨림을 느꼈다.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그 안에서 희미한 별빛 하나가 어둠을 가르듯 반짝였다.
‘우리가 정말 이 길을 간다면, 나도 그 불씨를 끝까지 지켜야 해.’
낙인의 고통은 여전히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흔적이기도 했다.
그 흔적을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길이 필요했다.
그 순간, 플랫폼 한쪽에서 ‘지잉—’ 하는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리츠였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빛 빛줄기가 공기 중에 파문처럼 번졌다.
마치 고장 난 스피커처럼 음성이 겹쳐지고 있었다.
“로그… 접속… 감정 데이터…
불일치…
주파수 간섭…”
모두의 시선이 리츠에게 쏠렸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이마를 감싸 쥐고 있었다.
손끝에서 흘러나온 빛은 플랫폼 바닥에 잔상처럼 흩뿌려졌다.
엘라는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리츠, 괜찮아?”
리츠의 눈동자가 깜빡이며 초점을 잃더니, 귀에서는 금속성 잡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몸 주변에 미세한 진동이 일며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허공에 새로운 화면이 떠올랐다.
마치 투사된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영상은 왜곡된 구조물과 신호들로 가득 찬, 낯선 데이터의 흐름이었다.
온통 잡음으로 뒤덮인 흐릿한 영상 속에서 간헐적으로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네스트… 금지 구역… 데이터 왜곡… 감정 원형….”
제로가 화면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
“이건 단순한 오류가 아니야. OZ의 심장, 네스트에서 새어 나오는 신호일지도 몰라.”
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렇다면 OZ도 우릴 그냥 두진 않겠군. 먼저 움직이고 있어.”
하린이 두려움에 떨며 속삭였다.
“만약 네스트가 정말 감정의 근원이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 힘을 다 풀어버린다면, 또 도시가 무너질지도 몰라.”
엘라는 동료들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지만, 그 이면에는 감춰진 갈망이 서려 있었다.
감정을 억제당하며 살아온 나날,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의가 모두의 눈동자에 불씨처럼 반짝였다.
“우린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할 권리가 있어.”
엘라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사는 건 더 이상 답이 아니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 만들고, 위험이 닥치면 맞서 싸워야 해. 우리가 진짜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려면
지금 움직여야 해.”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류는 묵묵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로는 홀로그램 속 잡음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리츠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눈동자 속에는 서서히 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지하 플랫폼 위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은빛의 파동은 긴장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대비처럼 드러냈다.
낡은 철로의 떨림조차 긴장된 숨결처럼 느껴졌다.
지상에서는 여전히 OZ의 드론이 하늘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이 지하만큼은 달랐다.
두려움 속에서도 연대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 리츠의 몸에서 다시 은빛 파동이 번졌다. 잡음 사이로 짧고 명료한 메시지가 맺혔다.
“접속 경로… 발견. 네트워크… 개시 가능.”
순간, 침묵하던 플랫폼 안에 희미한 열기가 퍼졌다.
하린은 손을 떨며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엘라의 손을 힘껏 잡았다.
류는 주먹을 높이 들며 결의를 드러냈고, 제로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동료들의 눈빛을 확인했다.
비록 불확실하고 위험한 길이었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물러설 여지가 없었다.
지하의 어둠 속, 조용히 뛰기 시작한 네트워크의 맥박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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