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시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텅 빈 거리에는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건물마다 드론의 붉은 감시등이 깜빡이며 붉은빛이 도시의 숨통을 조여왔다.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거리엔 정적만이 감돌았고,
드론의 날개 소리와 금속성 스캐너의 섬광이 어둠을 가르며 감시의 공포를 더욱 날카롭게 드러냈다.
시민들은 창문을 굳게 닫고 두려움에 잠겨 있었지만, 지하 폐기 구역에서 막 빠져나온 엘라와 동료들은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다.
네트워크의 첫 연결을 시도하기 위해, 그들은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이 구역에 신호 증폭기가 있어. OZ가 사용하는 중계 장치야.
그걸 잠시 마비시키면 우리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제로가 펼친 간단한 지도에는 도심 한복판, 철저히 감시받는 구역에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겠지. 우리가 거기서 무언가를 하면, OZ는 곧장 들이닥칠 거야.”
“맞아. 하지만 지금은 그런 위험 정도는 감수해야 해.” 엘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우리가 계속 숨기만 한다면, 낙인은 영원히 낙인으로 남아.
우리는 감정을 보여줘야 해. 공명이 혼돈이 아니라 힘이라는 걸.”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린 시민들에게 선택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
하지만 모두가 각오해야 해. 실패하면 도시는 더욱더 깊은 두려움에 잠길 거야.”
모두의 시선이 하나로 모였다.
계획은 단순했지만, 성공 확률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신호 증폭기 주변에 숨어 있다가 엘라와 리츠의 감정 공명으로 드론을 교란시키고,
그 틈을 타 제로가 장비로 증폭기를 마비시킨다.
단 몇 초—
그 짧은 찰나가 지하 네트워크가 세상에 첫 신호를 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도심 광장. 어두운 하늘 아래, 붉은빛을 토해내는 거대한 안테나 장치가 으스스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십 대의 드론이 원형을 그리며 순찰하고 있었고, 인적이 끊긴 광장은 기계음만 맴도는 무덤 같았다.
엘라는 하린, 류, 제로와 함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리츠의 은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그녀의 내부 시스템은 이미 공명의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지금이야.” 제로의 신호와 함께, 엘라는 눈을 감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분노, 두려움, 희망, 절망—서로 상반된 감정들이 그녀를 감싸며 밀려들었다.
그 모든 감정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자, 그것은 뜨겁게 타오르는 에너지로 변모했다.
리츠가 손끝을 맞잡았다.
그 순간, 은빛과 황금빛의 파장이 겹쳐지며 공기를 진동시켰다.
두 사람의 호흡이 맞춰지자, 파동은 거대한 원처럼 퍼져나갔다.
드론의 센서들이 동시에 흔들렸다.
붉은 빛줄기는 방향을 잃고 흩날리며, 비행 궤도는 엉켜 서로 충돌 직전까지 요동쳤다.
삐걱거리는 전자음이 공중을 채우고, 감시등은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기계들은 감정이라는 이질적 주파수에 노출되며, 이성의 회로가 어긋난 듯 불안정하게 진동했다.
“성공이야…!” 하린이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순간, 증폭기 상단에서 강렬한 섬광이 터졌다.
OZ는 이미 이 작전을 예상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보조 드론이 출현해 공격 대형을 형성하며 광장을 포위했다.
“시간을 벌어!” 제로가 외쳤다.
그는 장비를 꺼내 들고 증폭기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방어막은 예상보다 훨씬 견고했다.
류는 드론을 향해 돌을 던졌고, 금속에 부딪히는 쾅 소리와 함께 곧이어 철 파이프를 휘둘렀다.
파이프가 금속에 닿으며 튄 불꽃이 그의 팔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몇몇 드론이 쓰러졌지만, 더 많은 기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하린은 시민들이 깨어나야 한다는 믿음을 되새기며 흔들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감정은 혼돈이 아니라, 선택이야! 우리가 보여줘야 해!”
엘라와 리츠의 파동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러나 감정의 무게는 점점 그들을 짓눌렀다.
엘라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한밤중 불꽃을 팔던 플레어 소녀의 쓸쓸한 눈빛을 떠올렸다.
기억 속 장면이 겹쳐지며, 가슴속에 미약하지만 뚜렷한 전류가 퍼져나갔다.
고통과 온기가 동시에 밀려들었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바닥에 떨어지며 금빛의 진동으로 번졌다.
드론들의 궤도가 붕괴됐다.
충돌과 폭발이 이어지고, 몇몇은 땅에 처박혔다. 짧지만 결정적인 균열이었다.
“됐어!” 제로가 외쳤다.
해킹 장치의 불빛이 초록으로 바뀌며, 증폭기가 멈췄다.
동시에 지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통로가 열렸다.
화면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네트워크 접속… 감정 공명 확인… 첫 신호 발신 중…”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침묵하던 증폭기의 정지는 곧 OZ의 경보를 촉발했다.
광장 위의 경계등이 붉게 물들며 사이렌이 울렸고, 하늘 너머로 거대한 무인기 부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하린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우릴 추적하고 있어. 이제 진짜 사냥이 시작된 거야.”
엘라는 숨을 고르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호흡은 거칠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
“우린 오늘 밤 증명했어. 감정은 무기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라는 걸.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광장을 뒤덮는 기계의 그림자 속에서, 그들의 결의는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러나 다가오는 어둠은 불길한 폭풍을 예고하듯 더욱 짙어졌다.
희망과 위험이 교차하는 그 순간, 그들은 발밑으로 흔들리는 광장의 진동과, 머리 위를 가르는 드론의 굉음을 통해 다가오는 전쟁의 숨결을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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