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전광판, 그 붉은 경고
희뿌연 하늘 아래, 거대한 전광판이 번쩍이며 도심의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감정 테러리스트 – 즉시 체포 요망.’
강렬한 붉은색으로 깜빡이는 글씨는 마치 경고음처럼 시민들의 뇌리를 울렸고,
하늘 위에서는 무인 드론들이 벌처럼 윙윙거리며 공중을 배회했다.
그들의 렌즈는 사람들의 얼굴을 스캔하며, 감정 반응을 탐지하려는 듯 끊임없이 요동쳤다.
사람들은 시선을 피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공포는 일상이 되었고, 도시는 거대한 감정 억제 기계처럼 침묵 속에 숨을 죽였다.
거리의 정적은 전광판의 빛에 눌린 채 낮게 진동했고,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숨죽인 흐느낌이 메아리처럼 번졌다.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꼭 쥐며 속삭였다. "우리는... 괜찮은 거야?"
그 질문은, 그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 말엔 희망보다 의심이 더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은신처의 공기, 억눌린 파동
지하 은신처. 철제 문 너머 어둠은 불안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벽면엔 오래된 배관들이 숨을 쉬듯 미세한 소리를 냈다.
감정 해방자들의 본거지였던 이곳은 한때 저항의 불꽃이 움트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긴장과 침묵의 무게로 짓눌려 있었다.
하린은 낮은 조명 아래 앉아, OZ가 배포한 지명수배 전단지를 들여다보았다.
그 위에는 그녀 자신의 얼굴이 찍혀 있었고,
굵은 글씨로 ‘가장 위험한 감정자 – 확산 주의’라 적혀 있었다.
그녀의 손은 가늘게 떨렸고, 시선은 얼어붙은 듯 냉담했다.
"우리를... 괴물로 만들었어. 사람들을 지켰을 뿐인데."
그녀의 말에 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는 불꽃처럼 일렁였다.
"아냐. 우리가 한 일은 생명을 구한 거야. 감정을 없앤 그들과 달리, 우리는 끝까지 지켜냈지."
엘라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에서 또렷하게 떠오른 장면 하나. 그날의 불길, 아이의 눈동자,
그리고 심장을 울리던 미세한 떨림.
회상의 파편 ― 불길 속의 아이
무너진 빌딩 잔해 속, 절망의 그림자 아래 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먼지투성이의 얼굴, 까맣게 그을린 작은 손, 그리고 터지지 못한 울음.
엘라는 그 아이 앞에 다가섰다.
주변은 무너지는 콘크리트와 번쩍이는 화염, 경고음을 울리는 구조물 센서음으로 가득했지만,
그 순간 만큼은 고요했다. 그녀는 아이의 눈을 응시했다.
공포, 슬픔, 외로움... 그 모든 감정 뒤편에 자리 잡은,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
엘라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 넌 느낄 수 있어. 그리고 그건, 네가 살아 있다는 증거야.
우리가 끝내 지켜낼 거야."
그 순간 아이의 눈에서 맺힌 눈물이 떨어졌다.
불타는 도시 한복판에서, 인간다움은 그 작은 존재의 떨림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 기억은 엘라의 가슴 속에 불씨처럼 살아 있었고, 그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현재로의 복귀 ― 침묵 속의 울림
기억의 조각에서 돌아온 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음성은 낮았지만 단단했다.
"감정은, 누군가에겐 불씨고, 누군가에겐 위협이야.
우리가 마주한 건 바로 그 위협으로써의 낙인이야."
그 순간 제로가 어둠 속에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감정 로그가 저장된 투명한 인터페이스 장치가 들려 있었다.
"OZ가 네트워크를 폐쇄하기 시작했어.
지하 통신 노드는 절반 이상 붕괴됐고, 접촉하던 감정 연구소도 모두 정지 상태야."
류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건 더 이상 통제나 조정이 아냐. 이건 전면전이야.
감정을 가진 자들과, 감정을 없애려는 자들 사이의."
하린이 조용히 물었다.
"우린...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이렇게 낙인 찍힌 상태로?"
엘라는 벽에 붙은 지명수배 전단지를 떼어내어 바라보다, 그것을 천천히 구겼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릴 가두려는 족쇄가 있다면, 우린 그 족쇄 위를 걸을 거야.
감정은 도망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품고 걸어가야 할 진실이야."
낙인의 심연, 그 너머의 연대
은신처 한켠에 놓인 오래된 모니터가 깜빡였다.
금이 간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점멸하며 떠올랐다.
“코드-17 구역에 잔여 감정 네트워크 파동 감지. 접촉 가능한 노드 존재.”
제로가 고개를 들었다.
"우릴 기다리는 이들이 있어. 낙인을 거부하고, 감정을 연대의 매개로 삼으려는 자들."
그 말에 하린이 깊은 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전단지를 두 손으로 찢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우리가 낙인이 아니라는 걸,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 해."
엘라는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아이가 남긴 작은 그림 조각을 꺼냈다.
타오르는 태양 아래 손을 맞잡은 두 사람. 그리고 그 아래 적힌 문장.
‘감정은 함께할 때 더 강해져.’
그녀는 그 조각을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건 시작이야. 낙인도, 억압도, 이걸 막을 수 없어. 우리가 이 진실을 붙들고 있는 한."
그녀들의 손이, 하나씩 그 위에 겹쳐졌다.
불안도, 상처도, 분노도, 그 순간만큼은 새로운 연대를 향한 맹세가 되었다.
어둠 속에서 움튼 연대는, 낙인을 불태우는 불씨가 된다.
그리고 그 불씨는 곧, 혁명의 첫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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