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잔다르크는 효심도 지극해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뮬란>(98)에 이어 20년이 더 지나 실사영화 <뮬란>(20)을 내놓았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흥행에 큰 실패를 거둔 ‘뮬란’은 중국이 자랑하는 중화영웅이다. 국가(왕)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전통적 윤리의식이 체화된 인물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뮬란’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흑백 무성영화시절부터, 홍콩 쇼브러더스 작품, TV드라마로도 수차례 만들어졌다. 2009년 만들어진 마초성 감독의 <뮬란: 전사의 귀환>도 그 중 하나이다.
옛날옛날 한 옛날, 중국이 북방오랑캐의 침공을 받고 전국에 걸쳐 징집령이 내려지자 병약한 아버지 대신 남장하여 종군한 목란(木蘭,무란)이라는 여자(소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뮬란=화목란, 문학에서 역사로
우선 목란 아가씨가 실존 인물인가하는 점이다. 목란에 대한 최초의 문학적 기록은 중국의 악부가사 <목란사>(木蘭辭)에서 시작한다. 목란시(木蘭詩)라고도 불린다. ‘악부’는 남북조(南北朝) 시대 유행한 시가문학형태이다. 중국문학사가의 연구로는 목란사는 남조 진(陳)나라의 책자에 처음 등장한단다. 이 책은 유실되고 이후 수당시대의 문인이 기재한 내용이 300여 자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여하튼 오랑캐의 침략에 맞서 싸운 민족영웅임에 분명하다. 당나라 때는 조정으로부터 효열장군(孝烈将军)으로 추존된다.
여하튼 목란사에 따르면 옛날에 어느 마을에 목란이 살았고 아버지 대신 전쟁터에 가서 무려 12년을 남자 틈에 부대끼며 전쟁을 하였고 결국 살아서 돌아왔고 황제로부터 군공을 치하 받는다. 이후 목란은 상서성(尚書郎) 벼슬을 내리는 황제의 요청을 뿌리치고 고향의 부모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12년을 같이 전장을 누린 사람들은 군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야 그제야 목란이 여자임을 알게 되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된단다.
이 이야기는 이후 조금씩 변색된다. 징집령이 내려졌을 때 ‘어버지는 노약하고, 남동생은 어리고....’부터, ‘18년을 열심히 싸워 대장군이 되고...’, 여자였다는 것은 엄연히 황제를 기망한 것이니 처형을 당했다... 까지. 중국의 많은 문학가들이 목란사의 내용을 연구했다. 역사적으로 목란의 종군시기는 북위의 유연정권 정벌과 관련이 있다고 고증한다. 임금으로 따지면 북위 효문제(서기 485~492년) 무렵으로 사료된다. 그러니 12년 종군은 조금 아귀가 안 맞는다. 목란의 성씨부터가 논란이다. 최초에는 “목란의 성씨는 알 수가 없도다..”라는 기록에서 주(朱)씨라고 고증한 사람도 있고, 한(韓)씨라고도 보는 사람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임(任)씨란다. 주목란, 한목란, 임목란 등 다양하다. 위(魏)씨 기록도 있다. 요즘 화(花)씨, 즉 ‘화목란’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명(明)대 기록에 따른 것이다. (明代文學家徐渭將《木蘭詩》改編的《雌木蘭替父從軍》,劇中自稱“妾身姓花名木蘭) 물론 찾아보면 이설(異說)은 더 많다.
역사에서 영화로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뮬란>을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중화열풍을 이끌자 중국은 성장하는 자국의 영화산업을 기반으로 중국산 <뮬란>을 만들기 시작한다. 1998년 홍콩 TVB에서 진묘영(陳妙瑛) 주연으로, 1999년에는 대만에서 원영의(袁詠儀) 주연의 <뮬란>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영화로는 몇몇 영화사에서 제작계획을 흘렀는데 홍콩 마초성(馬楚成) 감독에 중국 여배우 조미(趙薇,자오 웨이) 주연의 <뮬란-전사의 귀환>(花木蘭 )이 먼저 개봉되었다.
조미 주연의 <뮬란>은 원작(목란사)에 비교적 현실적인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무공을 배운 목란은 아버지 대신 한밤에 몰래 아버지의 징집패를 들고 입대한다. 남자들 틈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고, 전우애를 다진다. 결정적인 고비마다 같은 마을 출신인 비소호(방조명)와 전우이자 상관 문태(진곤)의 도움을 받는다. 영화에서 조미가 싸우는 적은 유연의 부족들이다. 기마 유목부족인 유연은 북위를 치기 위해 연합하고, 그 선두에는 잔인한 문독(호군)이 선다. 승승장구하는 조미의 군공에 위협을 느낀 북위의 대장군의 배신으로 전멸할 위기에 처하지만 결국 조미는 승전고를 울리게 된다.
이 영화는 <뮬란>에 쏟는 중국인의 애정만큼이나 캐스팅도 화려하다. 히로인 뮬란 역에는 그 옛날 드라마 <황제의 딸>로 한국에 중국여배우의 존재감을 널리 알린 조미가 맡았다. 10년 풍상에 지쳤을 것도 같지만 여전히 ‘소연자’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인 문태 역은 중국의 톱스타 진곤이 맡았다. 실력파, 연기파, 개성파 배우 호군(胡軍,후쥔)은 야심에 가득한 유연족 대장 역으로 출연한다. 가만 보면 그가 출연한 TV드라마 <천룡팔부>에서의 소봉이 떠오른다. 성룡의 아들 방조명이 감초 조연으로 출연하여 영화의 활기를 더한다. 어릴 적 뮬란을 잠깐 연기한 배우는 서교(徐嬌)이다. 주성치의 <CJ 7호>의 아역배우이다.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출연자는 비타스(Vitas). 러시아 라트비아 출신의 가수이다. 미색의 소프라노를 보여준다. 극중에서는 유연족에 붙잡힌 서양인, 노예로 출연한다. 왜 출연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뮬란-전사의 귀환>은 기대했거나,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동안 나온 중국 전쟁영화들의 허장성세나 연기력부족의 감정과잉의 경우와 비교하여 이 영화는 섬세함과 안정감을 보여준다. 전쟁장면이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요즘은 워낙 CG가 일반화되었기에) 그동안 보여준 뮬란의 영웅주의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다. 뮬란은 기본적으로 여자이다. 그것도 여장부의 이미지보다는 곱고, 섬세한 소저였다. 그러니 그런 여자가 군복을 입고 전쟁터에 내던져졌을 때의 일차적 반응은 괴로움과 고통일 것이다. 동료가 죽고, 전우가 죽고, 믿었던 친구가 죽는 상황에서 섬세한 소녀는 어떻게 성장할까. 조국과 민족의 영예를 생각할까. 고향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할 따름일지도 모르나. ‘조미’의 연약함과 섬세함은 ‘뮬란’ 본질의 고뇌를 잘 살린 셈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뮬란>은 재밌는 중국영화이다.
역사를 다룬 영화이다 보니 고증에 관심이 많다. 중국 인터넷에서 이런 ‘옥의 티’도 지적한 사람이 있다. 뮬란이 문태를 처음 만나는 마구간 장면에서 문태(진곤)가 홍당무를 말에게 먹이러한다. 그런데 홍당무(당근)이 중국에 유입된 것은 13세기 와서란다.
목란의 고향은 어디인가
아, 하나 더! 중국의 많은 기록 중에 <<하남통지>>(河南通志)에 따르면 목란은 수나라 사람이고, 송주인이란다.(隋木兰宋州人姓魏氏 恭帝时发兵御戍 木兰有智勇 代父出征 有功而还..……乡人为之立庙) 이 기록 때문인지 중국 전역에서 몇 군데 마을이 ‘목란의 도시’를 주장했지만 지난 2007년 ‘중국민간문예가협회’는 허난성 우성(虞城,위청)현을 ‘목란의 고향’으로 지정했다. <뮬란-전사의 귀환>은 허난성에서도 찍었고, 이곳에서 거창한 시사회도 가졌다. 조미 등 출연배웅게는 명예시민증도 주어졌고 말이다. <뮬란>의 주제가는 장정영과 손연자가 부른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