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pt Aug 30. 2021

어쩌면 서로 마주친 적 있을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가, '그 뻔한 이야기'를 하는 방식


1. 잘못 알려진 농담


대한민국에서 제일 끝까지 듣기 힘든 얘기 베스트3라고 잘못 알려진 소재가 있다.


1. 군대얘기.

2.축구얘기.

3.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번외로 6.25 때 쓰던 물건 중 아직 사용되는 군대 보급품 이야기가 있달까.


이 이야기들이 재미없는 이유는 화자가 내뱉는 모든 단어가, 결국 묻힐뻔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끝까지 듣기 힘든 이야기 베스트3는 이렇다.


1.기껏 스물 남짓 먹은 남자애들이 군대에서 달고 사는 온갖 음담패설과, 덤으로 휴가 복귀 후 어떻게든 꾸며내 선임에게 생생하게 전해야하는 원나잇 무용담 이야기.


2.군대에서 당한 각종 기상천외한 가혹행위 얘기.


3.입대 후 지나온 날짜와 남은 전역 날짜를 매일 세고 또 세다가, 결국에는 처음으로 맞후임이 자신을 쳐다보는 억울한 눈길을 피하며 마침내 가해자가 되거나 기껏해야 방관자가 되기 시작한 날의 얘기.


이 이야기들이 끝내 들리지 않는 이유는 화자가 내뱉어야 하는 모든 단어가, 애써 파묻어놓은 자신의 쓴 뿌리를 끄집어내는 호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잘못, 잘 못 다뤄지던 이야기


어떤 소재는 잘못 다뤄지기도 하고, 잘 못 다뤄지기도 한다. 자주 다뤄지지만 왜곡되거나, 관심 밖이거나. 그리고, 둘 다 인 경우도 있다.


또 군대 얘기냐고 묻는 이들에게 되물어 보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군대 얘기 들어봤냐고. 군대 얘기 해본 적 있냐고. 두 질문의 답은 하나다. 이 드라마가 '그 이야기'를 한다는 의미에서. 이 드라마가 '한 것처럼'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말인즉, '또 군대 얘기'가 아닌 '그 군대 얘기'를, 환부에 도움이 될지언정 삼키기 힘들만큼 쓴 약이 될 그 이야기를, 어떻게든 소화가능하게 만들어낼 의지와 실력의 산물이 여기 있단 소리.


그러니 여러분은 이 약을 삼킬텐가. 그러니까, 53만여 명의 인구 치고는 겉으로 소상히 드러난 치부가 극히 적은 이 집단의, 그 폐쇄성에서 기인하는 이 모든 병세를 우린 아직 제대로 이야기한 적 없었음을 인정할텐가.


무슨 소린고 하니, 우린 여태 군인이 나오는 이야기, 전투와 작전이 나오는 이야기, 나라와 충성심과 사명감과 탁월한 스킬을 지닌 직업인으로서의 군인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봐 온 것을 근거로, 징병제를 바탕으로 하는 수직적 상명하복 체계와 남성중심의 거대하고 폐쇄적인 집단 내부의 실상을 안다고 착각해왔던 것은 아닐지 자문해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전체 인원 2천명 남짓한 검사 집단의 이야기도, 수없이 다뤄지면서 도식화되고 스테레오타입에 갇히다 그 틀을 다시 부수다, 또 다시 길고 긴 자기복제를 반복하다 끝끝내 진화해 나가더니, 모래시계로부터 시작해 이제 소위 비밀의 숲.에 이르렀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물론, 또 '내가 대한민국 검사야!' 류의 이야기냐고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지만) 검찰, 법조계, 정재계, 나라를 들썩이게 할 스캔들, 비리, 거악척결..등등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물며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에, 남성만을 의무적으로 징병하는 세계 군사력 6위의, 공정과 무임승차론과 역차별 등을 쟁점으로 하는 이대남들의 극심한 젠더갈등 유발 전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병역 의무 이슈가 선거철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대한민국일진데.


그러니, 또 군대 얘기냐고 묻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에겐, 호프집에서 복학생 선배에게 들은 얘기 밖에 없다. 복학생들은 우리에게 절대 해주지 않았다. '그 군대 이야기' 말이다.


사실은 나도, 바로 '그 군대' 이야기야말로, 듣고 싶던 적도, 하고 싶던 적도 없다.



3. 어디서 들었다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신학교에 다니다 입대해서 조교로 차출된 신병이 첫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고 탈영을 해버려서, 그를 조교로 추천한 선임이 그가 교회에 있을 것 같다는 소릴 패닉에 빠진 신임 소대장에게 그저 뇌까렸는데, 그 얘기를 보고받은 대대장이 그 선임에게 소대장의 사복을 빌려 입게 하고 소대장과 함께 그 선임을 부대 밖으로 내보내며, 그날 밤 안에 헌병대 몰래 무슨 수를 쓰더라도 찾아오라고 했고, 그 선임은 수원역 인근의 모든 교회를 뒤지다가 한 예배당 주차장 뒤에서 담뱃불로 성경책을 태우고 있던 그 신병을 발견했고, 신병은 자길 찾으러 온 선임을 보고서 멍한 얼굴로, 안도한 것인지 무안한 것인지 모르지만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슬쩍 웃어보였고, 그 때 선임은 속에서 뭔가 덜컥 소릴 내며 툭 끊어진 기분이 들었다던가, 그 웃음을 당장 가시게 해야할 것 같아 손이든 발이든 주먹이든 손바닥이든 휘둘러야 했다던가 하는.


해안소초에 설치된, 만들어진지 40년이 넘은 야전 전화기의 전선을 후임의 입에 물리거나 손가락에 쥐게 하고 손잡이를 돌려 전기가 흐르게 하는, 경계근무시간의 소소한 장난질도, 그 전화기의 역사처럼 대대손손 도도히 흘러내려온다던가. 하는.


여러분이 건너건너 아는 지인의 친한 누구로부터 들었다고만 말해야 남에게 전해지는. 그러니까 그 놈의 군대축구얘기나 라떼는부대 얘기 아래 덮어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다지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싶던 '그 군대 이야기.'



4. 드라마 <D.P>가 다루는, 가려졌던 일각들


디피조에 투입되어 처음으로 탈영병을 잡아 부대로 복귀하기 전, 주인공이 수갑을 찬 탈영병에게 묻는다.


'지금 무슨 생각해요?'

'여기가 너무 편안하다는 생각이요.'


코골이가 심해 매일 밤 방독면을 쓴 채 물고문을 당하던 탈영병. 그를 잡아 영창에 가두는 것은 그를 벌하는 것일까, 그를 돕는 것일까. 그는 영창의 독방에서 잘 잘 것이다. 형기를 채우고 부대로 복귀하기 전까진.


이 드라마를 즐길 잠재적 관객들을 위해, 내용을 더 언급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D.P는 여태 다뤄지지 않던 것들을 보여준다. 어쩌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 드라마로 접하게 되는 생생한 현실은, 전혀 모르던 영역의 빙산의 일각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단 6개의 에피소드, 단 한 시즌이 다룬 그 일각은, 그 곳, 그 집단, 그 시스템의 치부의 핵심을 드러내 보이고, 그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삼엄한 철조망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온기와 희망마저 놓치지 않는다.


더 대단한 건 이거다. 그 와중에 빛나는 캐릭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멋지고 입체적이고 웃기고 응원해주고 싶은 두 주인공 콤비, 정해인, 구교환. 그리고 조현철. 딱 맞는 무대에서의 최고의 퍼포먼스. 김성균, 손석구를 위시한 나머지 역할들도 편하고 안정된 연기로 이들을 받쳐준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톤&매너.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땐, 원작 만화의 팬으로써 조금은 우려가 되었다. 너무 가벼운 터치로 원작을 각색한 것은 아닐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나니 오히려 매우 탁월한 각색이라 여겨진다. 원작자가 깊이 관여하여 원작의 톤을 드라마에 맞게 연출과 함께 세심하게 수정해나갔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과하지 않지만 할 건 아끼지 않고 해내는 촬영과, 훌륭한 음악도 크게 한 몫을 한다.


개인적으론 액션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특히 옥상에서의 추격씬과 복싱을 기반으로 한 격투 장면에서 뭔가 흠집을 잡아보려는 속셈으로 반복해서 보다가 오히려 감탄했다. 컷을 잘게 쪼개지 않으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합과, 배우의 부담을 덜어주는 계산된 카메라 무빙에서, 그저 있어보이려는 보여주기식 액션을 지양하고자 콘티와 리허설에 공들인 티가 난다.


스토리의 진행에 있어서는, 다소 뻔한 부분은 캐릭터의 매력과 편집의 리듬 등 다른 장점으로 돌파하고, 불필요하게 감정이 지나칠 것 같다 싶은 것은 연출로 더 부각시켜 강요하는 대신 욕심부리지 않고 산뜻하게 넘어간다.


쉽게 말해, 군대 고발 다큐도 아니고, 윤종빈 감독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군부대에서 몰래 찍은 사회고발성 독립영화도 아닌데, 리얼하고 디테일하고, 문제를 피하지 않고, 그런데 무쟈게 재밌단 거다.


이런게 가능할 것 같나. 매우 드물게 이 위치에 도달하는 콘텐츠들이 있다. 

그런 걸 한마디로 대박이라 말한다. 이 드라마가 그렇다.


좋은 원작이라는 소재와 그 소재로 맞춤 옷을 해 입은 연출의 시너지. 익히 인정받은 배우들의 이윽고 만개한 포텐. 그러니 뭐라고? 대박이라고.



덧. 어쩌면 우리 모두 같은 곳에서


이 드라마의 각본과 더불어 원작 만화 'D.P 개의 날' 을 쓴 김보통 작가님을 만나뵌 적이 있다. 작가님은 에세이집 출간을 계기로 내가 패널로 있던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을 하셨고, 일산에 살면서 나와 같은 마트에서 장을 본다는 공통점에 대해 말한 기억이 난다. '어쩌면 마트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라며 서로 웃었다.


우린 마트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내가 작가님을 가까이서 마주치더라도 얼굴을 아마 기억하지 못할테니 모르고 지나치리라. (작가님은 왠만하면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시고, 검색을 하면 주로 얼굴에 탈을 쓴 모습이 나온다. 팟캐 녹음 시에는 당연히 탈을 쓰지는 않으셨지만, 딱 벌어진 어깨에 풍체가 매우 건장하시단 기억이 있으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날 일산의 모 대형마트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군복에 다른 사단 마크를 달고, D.P(군무 이탈 체포조)였던 사람과 신병교육대 조교였던 사람이 그렇게 지나치는데 이들의 건너건너 아는 누구는 이들 중 한 명에게 훈련을 받았을지도, 혹은 잡혀왔을지도 모를 일. 그 이해당사자 모두가 같은 마트 혹은 길 건너편 빵집에서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느 날, 알아보지 못하고, 혹은 모른 척 하며, 지나친다. 덮어두기로 하거나 잊으려 노력한다.


가담한 사람이, 당한 사람이, 모른척한 사람이, 끝내 양심을 지킨 사람이, 끝내 모질지 못했던 사람이, 결심을 지켜 사람을 구한 사람이, 결심을 지켜 도망쳤던 사람이, 결심을 지키지 못하고 잡혔던 사람이, 도망치지 못하고 그저 버텼던 사람이, 모른 척 할 수 없어 다친 사람이, 망가져 버린 사람이, 이겨낸 사람이.


그래, 다들 간다는 그 군대를 무사히 다녀 온 사람들이. 

아니, 어쨌든 죽지 않고 돌아왔지만 가기 전과는 절대 같을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전 02화 왕조가 끝나도 살아남은 광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