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일 흐림
Berducedo-Salime 20km
7:40 출발 1:30 도착.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젊은 요르그와 시리아 청년은 내가 침실로 돌아간 이후에도 열심히 달린 듯.
한 달을 넘는 일상이 몸에 배어서인지 그래도 어찌어찌 일어나 배낭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오늘은 다운힐이 대부분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요아킴을 비롯한 독일 3인을 잃어버리고 요르그와 시리아는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내가 멈춘 살리메의 다음 마을인 카스트로까지 갔다.
며칠 동안 같이 걸었던 일행들과 헤어지게 된 것이다.
작은 마을이고 일요일이라 문을 연 곳도 별로 없어서 썰렁했다.
일찍 도착한 편이라 아직 자리가 남아있어서 오랜만에 공립 알베르게에 묵게 됐는데 다행히 1층 자리에 좋은 베드를 잡았다.
점심으로는 그동안 아껴온 오뚜기 미역국 라면을 끓여 먹었다.
주방에 인덕션과 냄비 한두 개가 있는 정도의 별 시설은 없었지만 라면 하나 끓여먹기엔 손색이 없었다.
어제의 숙취를 한방에 날리는 훌륭한 해장이 되었다.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다 먹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한 후 이제껏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던 김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다.
며칠 전 위스키와 콜라 댓 병을 사 와서 알베르게 주방에서 홀로 드시던 그 양반이다.
김 선생님은 올해 칠순 기념으로 산티아고를 왔는데 프랑스길을 한번 걸으셨다고 한다.
북쪽 길 초반에 잘 걷다가 데바-마키나 오르막 구간에서 고생을 심하게 한 뒤로 전의를 상실하고 계속 버스와 택시로 북쪽 길 일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쩐지 그동안 몇 차례 오다가다 지나쳤는데 늘 알베르게에 일등으로 입실해 있었고 옷이 깨끗한 차림이어서 의아했었다.
김 선생님은 제일 늦게 알베르게에서 퇴실하여 동네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웹소설이나 한국 신문을 읽는 것으로 소일하다가 버스를 타고 하루 일정 정도 거리의 마을로 가서 또 한참을 휴대폰을 보면서 기다렸다가 알베르게 오픈 시간에 체크인을 하고는 또다시 밤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오목 게임 같은 것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지루한 일정을 보내지 말고 차라리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여행을 하시거나 몸이 불편하시면 귀국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는데 자기는 이렇게라도 순례를 마치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버스 타고 다니는 걸 순례라고 하기엔 좀 거시기한데…
저녁은 근처 사설 알베르게에 묵고 있던 독일 노친네들과 연락이 닿아서 김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일요일에 문 연 식당이 딱 한 개라 이 마을에 머물고 있는 모든 순례자들이 다 모였다.
다행히 우리는 일찍 간 편이라 기다리지 않아도 됐는데 음식이 별로여서 대강 먹고 나왔다.
내일 아침에 요아킴과 다른 독일 노친네들과 만나서 함께 아침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