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금 흐리고 비
Tineo-Samblismo 19km
며칠째 잠을 못 잤는데 또 한시에 깨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간신히 6:30까지 잤다.
일어나서는 목이 말라서 황급히 물을 마셨다.
이층 침대였지만 워낙 자리가 여유 있어서 대부분 이층은 비어있는 상태였다.
오늘은 거리가 짧아 느지막이 나섰고 한번 앉은 카페에서도 한참을 머물렀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모두들 천천히 걸었다.
여정의 대부분이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었는데 통행량은 많지 않아서 별로 위험하지 않았고 앞서서 치고 나가는 이 없이 도로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서 걸었다.
유난히 자전거 순례자들이 여럿 눈에 띄었는데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얌전히 오던 비가 결국 굵어지자 모두들 때마침 등장한 바르에 몰려 들어갔다.
먼저 와 있던 이들과 우리 뒤에 온 이들로 카페 안은 금세 그득 찼다.
서로 자리를 권하고 남는 의자를 건네 주어 이리저리 뒤섞여 함께 앉았다.
북쪽 길의 메인 랭귀지는 독일어였다.
스페인어도 프랑스어도 힘을 못쓰고 다행히 독일은 영어 교육을 하고 있는지 독일어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영어로 소통은 가능했다.
스페인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의 영어 실력은 정말로 민망할 지경이어서 원, 투, 쓰리 같은 숫자나 '스톱', '워터'같은 쉬운 단어의 소통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
몇 년 전 프랑스 길을 걸을 때 너무 날이 더워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는데 차가운 커피를 마시지 않는 당시 유럽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희한한 음료에 속했다.
에스프레소에 얼음을 넣어 녹여 마시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될 테니까 에스프레소 한잔과 얼음을 글라스에 달라고 요청했는데 스페인어로 얼음이 뭔지 몰랐다.
“아이스 뽀르빠보르”
“기브 미 섬 아이스 플리즈”
손짓 발짓을 더해서 거듭 외쳤건만 카페에 있는 이들은 '아이스'가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답답해서 주방에 얼음이 보이는지 두리번거렸지만 보이지는 않고.
지금이야 번역기도 있고 인터넷이 흔했지만 당시는 스페인 시골마을이었다.
결국 그냥 뜨겁고 쓴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시고 말았다.
며칠 후에야 아이스가 스페인어로 '이엘로'라는 것을 알았고 이제는
“이엘로 콘 카페 그란데 뽀르빠보르”라고 주문을 한다.
그러면 "유 원트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되묻는 세련된 바르도 가끔 있다.
아마 한국인에게 배우지 않았을까?
요아킴이 모두에게 맥주를 샀다.
급경사와 거친 길로 힘은 들지만 같이 걸은 모든 이들은 만장일치로 경치가 멋진 호스피탈 루트를 택하기로 했다.
삼블리즈모 알베르게는 완전히 숲 속에 있는 외딴집이었는데 알베르게 외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어서 모든 것을 알베르게에 의존해야 했다.
도착 후 모두 젖은 몸을 씻고 개운하게 옷을 갈아입었는데 저녁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출출했다.
아무런 간식이 없던 요르그와 요아킴에게 내가 가진 과일과 치즈, 빵을 내주었다.
젊은 호스피탈레로는 사람들이 거실에 모여 심심하게 앉아있자 와인과 과자를 내왔다.
아늑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섞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느덧 화제는 각 나라의 맛난 음식이 되었다. 일본인은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스시가 맛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사시미와 우리의 활어회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까지 음식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독일 여인이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할 때 좋은 점을 얘기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누군가 내게 다시 활어회를 먹는 이야기를 물어와 답을 해주는데 독일 여인이 내게 정색을 하고 묻는다.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녀의 얼굴에는 야만인을 상대하는 듯한 역겨움이 묻어 있어서 나는 많이 민망하고 당황했다.
하지만 육식을 하고 생식을 하는 일이 죄스러워하고 미안해야 할 일인가 생각해보니 화가 났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에게 미소하고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잠시 있었던 문제였지만 나는 두고두고 그녀가 미웠고 분했다.
내 기분을 달래주려는 하나님의 은총이었는지 며칠 전 숲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려준 체코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합석했다. 무료하던 알베르게는 곧 활기를 띠게 되었는데 젊은 아기 엄마가 너무 자연스럽게 가슴을 드러내고 모유수유를 하는 바람에 나는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좀 어색했다. 유럽 여인들에게 언어와 육체로 무차별 공격을 받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