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목 흐리고 비
Salas-Tineo 20km
7:20 출발, 12:20 도착.
전반적으로 오르막이 많은 날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산을 오를 때에도, 네팔의 안나푸르나와 쿰부 히말에서도 업힐 uphill, 즉 오르막에 강했다.
지금이야 스쾃에 런지 등 하체 운동을 따로 챙겨서 하지만 예전에는 하체 운동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오르막에서는 지치지 않고 다른 이들을 추월해서 쉬지 않고 오르는, 스스로 생각해도 기이한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몇 번 마주쳤지만 ‘올라!’와 ‘부엔 까미노’ 정도의 인사만 주고받았던 독일 노친네 요아킴과 제대로 인사를 나눈 것은 오늘 오르막에서였다.
요아킴은 뮌헨 근교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취미로 에칭 판화를 하고 집 근처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미술사 수업을 듣기도 하는 50년생 남성인데 키가 무려 195센티였다.
빌도 엄청나게 커서 이 노인네의 보폭 하나는 내 것의 1.5배 쯤되서 평지에서 나는 그를 쫓아가기가 버거웠다.
하지만 언덕길이 나오면 나는 요아킴을 번번이 따라잡으며 치고 올라갔는데 그럴 때마다 요아킴은 분개해하며 서둘러 쫓아와서 나와 요르그는 그 모습을 뒤돌아 보면서 웃었다.
요아킴은 프랑스길과 포르투갈길, 은의 길을 마친 베테랑 뻬레그리노였는데 이번 까미노를 마치면 아내와 딸들과 포르토에서 만나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과묵한 요아킴이었지만 손녀 얘기만 나오면 입이 귀에 걸리면서 내게 앙증맞은 손녀들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이날 이후로 계속 같이 걸으며 요르그와 함께 나의 까미노 최애 친구가 돼주었다.
오늘은 거리가 짧아서 일찍 끝났다.
목적지 도착 무렵 알베르게를 지나쳐서 500미터를 더 갔다가 돌아왔다.
억울하다.
걸으려고 간 순례길인데 이렇게 조금이라도 더 걷게 되면 억울한 마음이 드니 참 아이러니이다.
알베르게가 장난이 아니게 좋다.
알고 보니 고급 호텔과 같이 운영되는 알베르게인데 지하층은 알베르게이고 지상층은 호텔이었다.
오면서 걷는 구간 내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 경주를 위해서 관계자들이 코스를 정비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는데 호텔에 도착해 보니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당장 경기가 내일부터 열리고 자전거 부문과 모터사이클 부문이 따로 있는 경기 같았다.
경주 코스 중에서 까미노를 가로지르거나 나란히 가는 길들이 있어서 오늘도 걷는 구간 내내 노란 화살표 옆에 레이스 방향을 알리는 표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알베르게 시설이 좋아서 점심은 바게트 빵을 사다가 치즈와 생선을 얹어서 먹었다.
과일과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호텔 앞에는 로컬 장터가 열려 체리를 샀다.
엄청나게 싱싱하고 맛난 체리가 한 봉지 가득 2유로 밖에 안 한다.
요르그, 요아킴과 이후 코스에 대해 얘기했다.
내일 삼블리스모까지 가고 다음날 호스피탈 루트로 가기로 했다.
호스피탈 루트가 프리미티보 구간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데 대신 경치가 좋다고 해서 그리로 가자고 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걷는 동안은 비가 안 온다는 예보를 확인했다.
오늘의 큰 기쁨 혹은 발견은 바로 '아기'였다.
오후 무렵 알베르게 도착 한 시간쯤 전 산속을 홀로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기 옹알이 소리가 들린 듯했다.
설마 잘못 들었겠지 하고 걷는데 놀랍게도 내 앞에 젊은 부부가 아기를 업고, 또 세 살짜리 아기를 안고 까미노를 걷고 있는 것이다.
체코 부부였는데 아기가 정말 이쁘다.
노친네들로 득실대는 북쪽 길에서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니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으나 남편은 이미 체코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걸은 경험이 있는 프로페셔널 페레그리노였다.
하긴 그러니 아이 둘을 데리고 이 먼 길을 나섰겠지.
요아킴과 요르그, 또 다른 독일인 3명과 함께 호텔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