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

집필동기, 제목의도, 원고 요약

by 이프로

집필 동기


원하던 기회가 오질 않거나, 의도하던 것이 잘 안돼서…

차선을 택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원래 원했던 것은 영화감독이었지만 기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고,

또 지금 돌이켜보니 영화감독의 삶이 나와 잘 들어맞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감독이 되지 못한 나에게 돌아온 것은 영화과 교수자리였다.

내가 필름스쿨의 얼치기 학생이던 때와 비슷한 열정 하나로 눈빛이 초롱초롱한 학생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데없이 영화과 교수라니, 당황하던 나였지만

다행히도 내가 맡은 영화 제작 수업, 즉 필름 프로덕션 수업은 별로 교수의 의존도가 높지 않은 과목이다.


학생이 시나리오를 쓰고, 학생이 스탭을 구성해서, 학생이 영화를 찍는다.

교수가 하는 일은 참견, 훈수, 때늦은 책망, 당장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조언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전하는 일.

그나마도 감독을 맡은 학생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미술, 사운드, 편집, 촬영, 조명, 프로듀싱, 배급 등의 스탭 학생들은 학기의 반 이상을 곁다리로 앉아 있다가 돌아간다.

이건 내가 불성실한 교수여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필름스쿨이 대동소이하다.

영화학과 모집정원이 100명이 넘어가는 대형 필름스쿨 몇몇을 제외하고는 연출을 위한 수업과 연출 위주의 커리큘럼이 지배적이다.

사운드 전공 교수나 편집 전공 교수를 뽑는다면 좋겠지만 학생수가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학년 정원이 수십 명 단위인 학교에서는 적절한 수의 과목 개설이 어렵고 시수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줄은 알지만 연출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 있겠지만 ‘좋은’ 영화를 ‘잘’ 만드는 방법은 사실 잘 가르쳐서 될 일은 아니다.

개인 교습쯤의 소수 인원을 밀착 지도해야 하고 학생의 재능도 필수적이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어 볼 수는 있지만 아무나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아무나’가 나인지 내 옆에 앉은 학생인지를 판별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도 자기가 가진 재능을 확신하기 어렵다.

뒤늦게 발견되기도 한다.

내 학생 중에는 배우가 되겠다고 연기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이런저런 영화제작 워크숍을 경험한 뒤에

촬영 전공으로 졸업해서 장편 영화 촬영감독이 된 경우도 있다.


내 안에 숨겨진 재능, 나도 모르고 있었던 끼를 확인해 보는 데에는 직접 대본을 써보고 영화를 만들어 보는 방법이 확실하다.

그것도 한두 편 경험으로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가슴 한 구석에 영화에 대한 열정과 소망이 피어오르고 있다면 시도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 앞을 지나면서, 혹은 영화를 보고 나서 속삭인다.

‘나도 한 때는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나에게 아직 세상이 모르는, 혹은 세상에 선 보인적 없는 돌발적이고 참신한 영화적 재능이 있다면

망설이지만 말고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탄생한 지 120년이 지난 지금이 인류 역사에서 영화 만들기가 가장 쉽고 편리하고 저렴해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도, 그리고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는 패기 넘치고 치기 어린 필름메이커들과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 것이다.

이 일련의 글이 그들에게 단편영화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행에서 길잡이나 지도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성공적으로 목적지로 이동하는 여정 중간중간에 올바를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해 줄 체크리스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가능한 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실제 프로덕션에 적용되도록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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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도

지난 20년간 대학에서 단편영화 제작을 지도하면서 매년 80편 총 1,600편의 영상물 제작과정을 지켜봤다.

그중에서 칸 국제 영화제와 같은 저명한 영화제에 입선한 작품도 있고 미장센 단편 영화제나 부산 국제영화제, 서울 독립단편영화제 같은

영화제에서 입상하여 장편 상업영화감독으로 기회를 이어가는 학생들도 봤다.

하지만 1,600편 중 대부분은 아무런 영화제의 입선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잊혔다.

성공하지 못한 단편영화들은 대체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패착들을 모아 분류를 해 본 것이다.

공통적인 패인들을 정리해서 단편 영화 제작 입문자들에게 보여준다면 그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어렵게 시도한 첫 시도에서도 영상 창작의 희열을 맛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고요약

자신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단편 영화에 담아 관객과 소통하고 이를 발판으로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진 구성의 장편 영화를 연출하는 기회를 얻는 데에 성공하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이와 관련하여 출간된 책들도 여러 가지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단편영화가 망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역설적 방법으로 망하지 않는 방법을 깨닫게 하는 의도인데

의외로 상당히 많은 단편 영화감독들은 망하는 방법을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망하고 만다.

쓰레기 같은 영화라도 만들어 보는 것이

아무런 영화를 만들어보지도 않는 것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


쓰레기 같은 영화 이후, 쓰레기 같은 영화의 경험을 교훈 삼아

더 나은 영화를 만들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경우 말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예산과 시간과 정력을 쏟아부어 만든 작업이 형편없는 결과물로 나타났을 때

또다시 돈과 시간과 열정을 들여서 새로운 작업을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망하지 말자.

망하지 말자.

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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