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획

by 이프로

기획이라니, 그런건 투자자에게서 빵빵하게 펀딩 지원 받고 영화관에 걸리는 상업영화에서나 필요한 얘기지,아직 단편영화 단계에서는 신경 쓸 필요없다. 모험하지 말자고, 어차피 장편 상업 영화로 가는 습작인데 잘 된 영화들과 비슷하게 가면서 간지나고 분위기 깔쌈하게 간다.



장편 영화의 경우처럼 단편 영화 역시 기획과 시나리오 집필, 프리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과

배급의 단계를 거쳐서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단편영화는 짧다는 뜻의 ‘단’자가 강조되는 이름 탓인지 단지 분량의 짧음이 영화를 결정짓는

주요 요건처럼 보이지만 단편영화는 장편영화를 줄여 놓은 것이 아니다.

단편영화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단편영화가 택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단편으로 할 이야기를 장편으로 늘려 놓거나 장편으로 제작해야 할 영화를 단편으로

압축하고 줄여서 실패한 사례들을 가끔 본다.

짧고 임팩트있는 이야기와 간결한 비주얼로 승부를 걸 때 단편 영화는 빛을 발한다.


장편이 하나의 메인 갈등과 둘셋의 주요 캐릭터들이 자잘한 서브 갈등과 조연 캐릭터들과 함께 얽히고 설켜서

반전과 해결을 만들어 내는 것에 반해

단편 영화는 비교적 단순한 갈등 구조와 소수의 인물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이고 짧은 내러티브로 구성한다.

또한 단편 영화를 입문용, 습작용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단편영화는 구체적인 배급을 염두에 두고 제작에 들어가기 보다는

‘영화제 출품’ 정도로 배급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저예산 독립 영화의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단편 영화는 ‘가볍게’ 가야 한다.

가볍게 라는 것은 적은 수의 등장 인물과 많지 않은 로케이션

그리고 짧은 촬영 회차를 말한다.

이 세가지, 적은 배우, 적은 장소, 짧은 촬영일을 충족시키면 영화는 대부분의 경우

저예산이 되면서 경험이 많지 않은 감독이 감당할 수 있는 작업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기획이란 무엇인가?

기획과 계획은 어떻게 다른가?

기획은 뭔가를 이루려고 계획하는 것이다.

단편영화에서 뭔가를 이루려는 것은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짧은 이야기로 담아내어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사람들은 영화라고 하면 장편 상업 영화를 떠올린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영화를 만들지만 편수 만을 보자면 단편 영화가 월등하게 많을 것이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에 업로드된 단편 영화만해도 부지기수이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채 완성된 단편 영화를 모두 헤아려 본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단편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단편 영화가 있는가?

제목을 댈수 있는 단편영화가 있는가?

별로 많지 않다.

제대로 된 단편영화를 찾는 것은 왜 이다지도 힘든 것일까?

막 만들기 때문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청춘들이 겁없이 카메라부터 집어들기 때문이고 다음 씬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생각없이

어디선가 본 듯한 좀 ‘있어 보이는’ 쇼트를 찍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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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단편 영화들이 자주 보이는 공통점들은

영화의 분량이 이야기와 맞지 않는다. 3분이면 될 이야기를 20분으로 늘여놓았다.

자아도취 ‘자뻑’스타일이다. 자기 혼자만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자기 혼자만 이해할 수 있다.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감독이 옆에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

말이 안되는 캐스팅에 말이 안되는 시나리오로 찍었다. 말인지 방구인지 알수가 없다.

엉성하고 대충한 편집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다.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영화로 내용을 신뢰할 수가 없다.

단편영화가 아니라 이런저런 장편영화의 멋진 부분을 따와서 꼴라주한 영화이다.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고 찍은 영화, 그 영화는 친구가 촬영했다.

여자 친구가 주연을 맡았고 내용은 제주도 여행이다.

별 의미없는 과잉 예산으로 의미없는 럭셔리 쇼트들로 이어진다.


이제 내가 만드려는 단편 영화는 이 셀수 없이 많은 단편 영화들과 달라야 한다.

겹치는 얘기가 아니어야 한다.

누가 이미 한 얘기를 또 할수는 없다.

보기 전에는 궁금하고 읽어보고 싶지만

보고 나면 한 순간에 별 쓸모가 없어지는

신문이나 철지난 잡지 꼴이다.


새로운 이야기, 아직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내용을 보여달라고 시간과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수 있을까?


오리지날리티, originality 독창성은 내가 지어낼 때 생겨난다.

세상에 흔한 애기가 남녀간의사랑 이야기이지만 내가 경험한 사랑 이야기이거나

내가 목격한 사랑의 경우 인류가 생긴 이래 발생한 많은 사랑 이야기와 차별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처한 상황,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망설임이나 수줍음 혹은 주변인의 질투나 응원 등

내가 말하려는 사랑을 독특하고 다른 사랑으로 만드는 두드러진 구별점이 있어야

내 사랑 이야기는 관객에게 인정받으며 끝까지 주목하게 된다.


단편 영화 기획이 성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엔딩이다.

충분히 숙고하지 않는 기획의 단편 영화의 엔딩은 난데없다.

허무하고 황당하며 갑작스럽고 기괴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솔깃하고 흡인력이 있었으나

전개에서 힘을 잃고 기존의 스토리와 닮아져 가거나

어찌어찌 절정까지는 끌고 왔는데 결정적인 클라이막스 없이 스르르 맥없는 엔딩으로 끝을 내버리거나

이도저도 감당이 안되는 절정에서 황급히 영화를 종료시키고는

말도 안되는 ‘오픈식 엔딩’이라고 관객에게 알아서 ‘해석’하라는 무책임한 감독들도 있다.


이야기를 만들 때는

누가(인물) 무슨 일을 겪어서(사건) 어떻게 해결했는지(결말)를 보여주는 것이 기본이다.

기승전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액트1, 2, 3, 도입-전개-해결 등

어떤 식으로 불러도 상관없으나 이야기에는 반드시 인물과 사건과 해결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이 흥미를 느낄 때 성공적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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