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명지고등학교는 서울 변두리의 사립학교였는데 당시 한 학급에 60명씩 12반이 있었고 심지어 야간 고등학교도 있어서 전체 학생수는 1,000명을 훨씬 넘기는 대형 학교였다.
이 학교는 좀 별난 구석이 있었는데 외국어가 그랬다.
입학 후 받아 온 교과서 중에는 영어, 독일어, 중국어가 있었다.
이때 대부분 고등학교들은 영어와 제2외국어 하나를 학교 임의대로 정해서 교육시켰는데, 이 학교는 독일어와 중국어, 서반아어를 1학년때 배워보고 2학년 올라갈 때 문과, 이과를 정하면서 자신이 제2외국어를 정하는 식이었다.
학생이 배울 제2외국어를 학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시절에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그리고 특이하게도 그중 한 언어가 중국어라는 점이 신기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중 하나를 제시했는데 불과 몇 해 전 대만과의 국교를 깨고 한때는 중공이라고 부르던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막 수립한 마당에 중국어를 고등학교에서 교육하는 것은 전국적으로도 몹시 드문 일이었다.
그때 중국어 선생님은 젊고 유쾌한 선생님이었는데 당시로서는 학생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던 중국어가 조만간 얼마나 중요한 언어가 될 것인지를 자주 역설했다.
중국어는 별로 인기가 없어서 2학년이 되면서 12개 학급 중 문과에 한 반, 이과에 한 반만 개설되었다.
즉 문과 중국어, 이과 중국어 이렇게 두 개 학급인데 이과는 그나마 학급 성적이 나아서 덜 무시당했는데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문과에 외국어도 중국어인 학급은 '똘 반'이라고 불렸고 나는 그 반의 학생이었다.
나는 새로 배운 독일어와 중국어에 흥미를 느꼈고 재미도 있었는데 둘 중의 하나만 정해야 한다고 하니 아쉽지만 중국어를 선택했다. 당시 중국어 선생님은 전국에 몇 안 되는 중국어 전공 인문계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소문에 의하면 학력고사 출제위원으로도 자주 활동하기 때문에 이 선생님이 알려주는 예상 문제를 공부하면 손쉽게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중국이 강국으로 부상하고 미국과 유럽 중심의 국제 질서는 재편될 것이라는 중국어 선생님의 열변에 설득당한 나는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선택한 보기 드문 학생이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중국어를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접하게 되었고 입시 공부 때문 이긴 했지만 고2, 고3 때는 꽤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것이 1980년대 내게 일어난 중국과의 인연이었는데 그로부터 30년 여가 흐른 2011년 여름방학에 나는 재직중인 대학에서 보내주는 2주간의 중국어 어학연수 과정으로 베이징에 다녀오게 되었다.
북경 어언 대학교의 초급 코스를 2주간 다니면서 나는 내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중국어가 완전히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배웠던 중국어 발음기호인 주음부호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알파벳으로 된 발음기호를 읽어야 했고 한자도 번체자가 아닌 간체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나에게 몹시 혼란스럽고 어렵게 느껴져서 나는 중국어가 친숙하면서도 낯선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2주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제 중국과 중국어는 나에게 더 이상 친숙하지 않다'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 되었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 중국이 무슨 큰 변수가 되겠나 싶어서 그러려니 하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