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감사 인사나 하고 나오면 될 줄 알았다.
도시탁셀을 빼주셔서 내가 안 죽고 살았다고.
정말 감사했다고.
뭐 이런 인사나 하고 나오면 될 줄 알았다.
피검사 수치도 좋고 초음파도 깨끗해서 1년 3개월 검진은 통과라고 했다.
근데, 심장기능이 더 떨어져서 6주 뒤에 재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폐렴을 앓은 흔적이 폐에 남았고.. 또 뭐랬더라.
일단 남은 표적 항암은 다 맞고, 심장검사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컨디션은 어떻냐 묻길래 요즘 들어 뼈마디 관절과 골반이 아프다 했더니 그건 이 약의 부작용 중 하나인데, 다음 주사를 맞고 난 후에도 아프면 뼈스캔을 해보자 했던가.
심장기능 검사
뼈스캔...
심장기능 검사는 20분 간격으로 두 번의 주사를 맞는다. 심장으로 흐르는 혈류 등을 측정하기 위한 방사선 동위원소 주사인데, 투여하고 기계 위에 누워 30여분 누워있으면 끝난다.
뼈스캔도 비슷하다. 그 정도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핵물질을 주사로 맞고 기계 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끝...인데, 항암을 하며 주사의 향과 맛을 느끼게 된 나에게는 그 검사들이 매번 고역이었다.
매번 심장기능 검사의 결과를 물을 때마다
“기능이 조금 떨어지긴 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아요.”
“변화 없어요. 아주 좋아요.” 같은 반응을 보였던 담당 교수였어서 재검사 얘기에 내가 받은 충격이 좀 컸던 것 같다.
그래도 정신줄을 부여잡고 궁금했던 것을 생각해 물었다.
“종양표지자는 정상인가요? 종양표지자도 꼭 추가해서 봐야 한다고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역시나 한결같이 친절한 담당의가 내게 말했다.
“이것 좀 보시겠어요?”
수술 한 달 전에 했던 피검사 결과였다.
몸에 암 덩어리가 있을 때였는데 종양표지자 수치는 정상이었다.
이건 뭐지?
순간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혼란은 길 수가 없었다.
오늘도 엄마를 따라 종양내과에 온 우리 집 어린이가 의사 선생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거든.
진료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웃는데 나 혼자 죄송한 이 상황은 무엇인가.
무엇이긴, 인사하고 나올 타이밍인 거지.
오늘은 표적 항암 허셉틴 17차가 있었던 날이었다.
보육공백으로 인해 가정보육 중인 아이는 오늘도 엄마를 따라 병원에 왔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에 좋은 환경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의료진들이 이해해주고 친절하게 아이를대해줘서 제법 데리고 다닐만하기도 했다.
오늘도 항암주사실 바로 앞에 아이를 앉혔다.
“엄마 저기서 금방 맞고 올게. 울지 말고 여기 앉아서 엄마 기다려.” “무슨 일 있으면 엄마 불러.”
신신당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과 밖, 그래 봐야 2초도 안 걸리는 거리다.
오늘도 아이가 앉은 곳에서 엄마가 잘 보이는 자리로 배정받고 허벅지 피하주사를 맞고 나왔다.
내가 주사실 밖으로 나오자, 거의 주사실 앞까지 와서 서있던 아이가 내게 와락 안겼다.
“엄마 무서웠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어서 무서웠어요.
...
순간 머릿속이 아찔했다.
기껏해야 “너 몇 살이니?” “엄마랑 온 거니?” “유치원 다니니?” “이름이 뭐니?”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엄마 없이 혼자 앉아 기다리는 만 4살 꼬마의 입장에서는 무섭고 무서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무섭게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는 엄마가 꼭 방법을 찾아볼게.. 이 말 밖에는..
그래도 이제 한 번 남아 다행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