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아기의 월령 만 35개월.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고 아빠가 칼퇴를 하며 이 시기를 버텨 보기로 했다. 양가 어디도 도움받을 곳이 없고,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 아이 돌보미보다는 퇴원 후에 내 가사를 도움받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일부러 수술을 주 중후반으로 잡았다. 목요일에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입원해 금요일에 수술을 받고, 주말을 끼고 회복하는 게 아이를 위해서도 나을 것 같았다. 수술을 주 후반에 하면 병리 결과를 듣지 못하고 퇴원할 수 있다는 건 몰랐으니까.
수술을 금요일에 받고 토요일 점심 즈음 병실을 옮기고나니 신랑이 왔다. 딸과 함께.
멀찍이 복도 어디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아기의 목소리.
“재이 엄마 어디쏘요?”
어, 엄마 여기 있어.
조용한 구석방 안쪽 자리에 아이와 앉아있었다. 엄마가 아프니 안아 달라고 하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듣고 온 딸은 엄마에게 안기지도 매달리지도 못한 채 그저 엄마 곁에서 얼굴을 비비며 웃을 뿐이었다.
하리보 젤리를 먹으며 잘 놀던 딸이 울기 시작했다.
“엄마 같이 가자 집에.”
같이 못 간다 하니 안아서 재워달라며 울었다.
수술을 하지 않은 쪽 팔로 안아 누워 재우는데, 누워 훌쩍거리던 딸이 벌떡 일어났다.
“아빠. 흑흑. 우리 그냥 가자 집에. 가자 집에. 엄마 안녕.”
그렇게 아이는 아빠와 병실을 떠났다.
아이랑 한강이 보인다는 신관 옥상공원에 가보고 싶었는데. 왜 나는 아직도 속이 안 좋은 건가.
신랑에게 아이가 놀란 것 같으니 바로 집으로 가서 적당히 먹이고 재우라고 했다. 어디 가지 말고 익숙한 곳에서 빨리 안정하게 하라고.
내가 키우는 어머니의 아들, 그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갔다고 했다. 저녁을 좀 잘 먹이고 싶었다고.
아이가 저녁을 먹다 말고 다 토해서 그 길로 응급실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고도 했다. 아이는 검사 결과 정상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참으로 힘든 하루였다는 말을 하루 지나 전해 들었다.
에라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