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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과 학생 Feb 08. 2024

[우울증 극복기] 첫 번째 이야기

끝을 알 수 있었다면 치료도 필요 없었겠지

Depression, 스페인어로는 La depresión 두 단어가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라틴어에서 왔기 때문인데 라틴어로 depressio, 압박, 사기 저하, 쇠약함 등 여러 단어를 합쳐서 만들어졌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 지식을 조금 더해보면 독일어 빼고는 아마 모두 비슷한 스펠링을 가지고 있을 거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우울"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단어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우울이라는 단어는 슬픔이란 단어와 많이 다르다. 내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우울을 강조하며 해석하는 이유는 라틴어로 보였듯이 표현 혹은 묘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울해.."
우리가 보통 기분 저하나 활기차지 않고 누군가에는 삶이 무료하고 지루할 때 많이 쓰이고

"슬프다.."
이 표현은 명확한 특정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있거나 감정 표현이 훨씬 덜 추상적이다.

-내 감정 사전에는 이렇게 적어놨다.


내가 이렇게 기록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학생이었다. 나름 성적이 상위권이라 우등생으로 영어캠프도 무료로 다녀왔었다. 물론 하나도 재미없었고 왜 갔는지 모르겠는 그런 캠프였지만 공부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숙제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렇듯 항상 독해력이 많이 부족한 학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시험공부할 때 문장이나 글을 이해하지 않고 1부터 10까지 전부 외워갔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 한계에 부딪쳤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더 이상 내 실력으로는 국어 과목을 따라갈 수 없었고 무엇보다 스페인어가 늘지 않아 학교 교육상담 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일주일 안에 선생님과 면담할 수 있었고 나는 어떻게 하면 스페인어가 늘 수 있을지 고민을 털어놨다.


"선생님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가 점점 어려워져요. 특히나 국어가 너무 어려워요"


"스페인어가 많이 어렵고 특히나 국어 수업을 반 친구들처럼 따라가기 어렵다는 뜻이니?"


"네.. 고등학교 2학년 올라오면서 취미로 하던 축구 클럽도 관두고 공부에 매진하려고 하는데 언어가 도와주질 않아요"


"그렇구나 혹시 선생님이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지? 네가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그럼요 뭔데요?"


"혹시 지금 슬프니?"


한참을 가만히 울음을 터트렸다. 선생님은 내 눈물을 보시고는 티슈를 건네주셨고 그렇게 기억하기로는 5분은 울었던 거 같다. 내 가슴 안에 있던 물이 든 풍선에 구멍이 뚫린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내 안에 있는 물풍선을 보셨고 나도 선생님 말을 듣고 그 풍선의 존재를 자각했다.


"괜찮아 편하게 울어도 돼. 선생님은 네 눈이 슬퍼 보여서 얘기했어"


그때는 이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심리학과 전공자이시고 교육심리학을 전공하셔서 우리 학교 교육상담 선생님으로 계셨다. 그 말은 즉, 내 눈이 아니라 내 마음을 보실 줄 알던 분이셨다.


"선생님 사실 저 너무 힘들어요.. 제게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근데 또 공부도 잘 안되고 유급할까 봐 무서워요.."


"그랬구나 선생님은 네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부모님과 한 번 면담해 봐도 될까?"


"네.. 제가 조금이나마 더 좋아질 수 있다면 어떤 도움이든 요청드리고 싶어요"


"그래 그러면 다음 주에 한 번 보도록 하자"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이 제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실까요? 저는 이제 좀 지쳤어요"


"그렇구나 조금 급할 수 있지만 이번 주에 부모님이 오시면 좋을 거 같아"


"네 제가 부모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그렇게 선생님과 면담을 끝나고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으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집에는 어떻게 갔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내 이어지는 다음 기억은 엄마가 와서 선생님과 얘기하고 별일 없던 그런 일주일이었다. 아마 이때 내 안에 있던 슬픔들이 우울로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 아닐까 싶다. 이 뒤로 내 상황은 더 악화되고 결국 선생님 요청에 응급실에 갔다.




슬픔은 감정이고 우울은 기분이다. 슬픔과 우울은 함께 공존할 수 있으며 반대로 공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슬픈 감정 없이 우울이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분이 지속되고 해소되지 않으면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쇼핑을 한다던가 늦잠을 자기 시작하거나 졸리거나 혹은 에너지가 너무 넘치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 있고 싶고 의지한다. 이렇게 돌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우울증은 나타나는 모습은 여러 방면이지만 또 알아보기는 쉬울 수도 있다.


이렇게 애매하게 얘기하는 것 같지만 명확하게 딱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일반적인 사고 습관을 봐야 한다. 습관들이 갑자기 달라진다면 알아보기 쉽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의 감정 탠션이 평소보다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는 사람을 되게 좋아한다. 내가 사람을 찾는 횟수가 평소보다 올라가거나 내려간다면 그 또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가 지속된다면 한 번쯤은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내 경험을 믿는 편이다. 지식이 부족하면 찾아보며 그렇게 하나씩 내 기억과 나만의 사전에 등록해 둔다. 굉장히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천천히 완성만 한다면 내 머릿속에 두꺼운 사전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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