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는 수산물의 천국이지만 2009년 당시에는 아직 학생이어서 대게를 사 먹을 만큼 여행자금이 여유롭지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거 먹지는 못할지언정 구경이나 하자!라는 생각에 수산물센터에 갔었는데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매혹적인 냄새에 홀려 그 냄새를 찾아 수산물 센터를 배회하고 다녔었다.
지하철 입구에서 파는 즉석구이 오징어 냄새와 비슷한데 그 냄새의 100배 이상 더 좋은 냄새였다. 한번 맡으면 잊히지 않는 냄새. 굉장히 신선하고 냄새만 맡아도 그 감칠맛이 느껴질 것 같은 냄새였다.
바닷가 지역에서 태어나 나름 수산물에는 익숙한 나지만 수산물센터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다양한,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재료들이 가득 있었다. 하지만 내 눈과 코를 사로잡은 건 킹크랩도, 대게도 아닌 수산물 센터 가장 끄트머리 건어물 가게에서 팔고 있던 그 오징어 구이였다.
당시 폐장 시장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어서 오징어 구이는 몇 개 남아있지 않았고, 나는 남아 있는 오징어 구이 두 봉지를 사서 신이 나서 돌아왔다.
냄새 못지않게 맛도 정말 촉촉하고 신선했다. 그 오징어 구이 냄새가 내 인생 2번째로 ‘기억에 남은 냄새’다.
하치만자카 여행을 끝내고 나니 오후 4시가 지나 있었다.
내 기억의 냄새를 찾아가 볼 겸해서 수산물센터가 있었던 베이 지역으로 이동했다.
베이 지역은 아카렌카라는 붉은 벽돌 건물로 이뤄진 레스토랑, 상점 등이 유명한 지역이다. 지난 여행 때는 기념품을 산다고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땐 왜 그렇게 이곳에서 파는 것들이 다 예뻐 보이고 갖고 싶던지…
내가 갖고 싶어했던 유리 공예품이나 소품들은 손톱만 한 작은 사이즈인데도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사진으로라도 담아오자는 생각에 찍어댔더니 지금도 하코다테 여행 폴더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은 베이 지역에서 파는 소품과 장식품일 정도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베이 지역.
아카렌카는 여전했고 이제는 그래도 갖고 싶은 거 한 두 개쯤은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지만 이곳에서 파는 어떤 것도 나의 흥미를 끌진 못했다. 오히려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오래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기억 속 그 냄새를 찾아 수산물센터로 갔다.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이곳이 맞을 것이다. 이 구역에 수산물 센터는 이곳 한 곳 밖에 없으니.
수산물 센터는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리고 그때 샀던 것과 비슷한 오징어 구이를 팔기도 했지만 내가 찾던 냄새는 어디서도 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냄새를 잃은 오징어 구이 하나만 사 가지고 나왔다.
환상적인 오징어 구이 냄새는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게 되었다.
수산물센터에 들른 후 비어홀에 들어가 오므라이스, 치킨 가라아케에 맥주를 먹었다.
그러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좀 아까워서 야경을 보러 갈까 하다가 가이드북에 나와있던 츠타야가 생각났다.
츠타야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서점일 것이다. 하지만 서점이라는 말로 츠타야를 담기는 역부족이다. 츠타야는 서점, DVD 렌털 샵, 카페, 상점 기능을 가지고 있는 서점의 형태를 한 복합 문화공간에 가깝다.
특히 하코다테 츠타야점은 다이칸야마 지점과 더불어 일본 내에서도 특색 있는 지점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야경은 지난번에 여행 왔을 때 보기도 했고 날이 너무 추워서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서점을 좋아하기도 하고 실내에서 따뜻하게 관광하자는 생각에 츠타야에 가기로 결정했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서점 안에서 편히 쉬면서 관광할 줄 알았지 그렇게 오래 방황하게 될지는 그때는 몰랐다….
가이드 북에서는 하코다테 시내에서 노면 열차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으로 나와 있었지만 JR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중심지에서 벗어난 외곽이라는 소리…
JR은 마침 레일 페스도 있고 해서 JR을 타고 기쿄역에서 내렸다. 구글 지도에 따르면 기쿄역에서 츠타야까지는 도보 30분 거리였다.
기쿄역에서 내리자 나랑 같이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마중 나온 누군가의 차를 타고 빠르게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두컴컴하고 상점들도 보이지 않았고 역무원도 없었다….
오후 7시에 기쿄역에 내렸는데 기쿄역에서 다시 하코다테로 가는 열차는 10시에나 있었다.
좀 더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 가기도 그렇고…
그렇게 홋카이도 신궁 가는 길에 10배는 더 외진 길을 걷기 시작했다. 뛰듯이 걸으며 생각했다. 서점 하나 가겠다고 목숨을 거는구나…
기쿄역 근처엔 꽤 규모가 있는 렌털 샵이 많았다. 거기에 츠타야까지 있는 걸 보면 어두워서 잘 안 보여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이렇게 별거 아닌 것처럼 쓰고 있지만 솔직히 진짜 무서웠다.
핫팩을 쥔 손을 계속 꽉 쥐고 갔을 정도로…
간간이 편의점 간판이 보일 때마다 안심이 될 정도였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걸어 츠타야에 도착했다. 츠타야는 보통 새벽 1시까지 운영을 하나 연말연시라 그날은 밤 9시까지밖에 운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도착한 게 7시 50분 정도였으니까…. 1시간 보겠다고 그 고생을 한 거였다.
그래도 가볼 만은 했다고 생각한다. 가이드북에 쓰여 있는 대로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꽤 넓고 한적하고 렌털 샵도 잘 갖춰져 있고 도서관 같기도 했다. 책 구경 좀 하다 찾아보니 여기에서 하코다테 역으로 바로 가는, 적어도 고라쿠엔 역까지 가는 버스가 있길래 시간 맞춰 나와서 버스정류장에서 9시 5분 버스를 기다렸는데 버스가 안 왔다…
안 온 건지 늦게 온 건지 내가 잘못 서 있었던 건지 진실은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기쿄역으로 걸어갔다. 하코다테로 가는 10시 열차가 내 마지막 잎새였다.
그래도 한번 왔던 길이라고 돌아가는 길은 좀 덜 무서웠다.
기쿄 역에 도착하니 오후 9시 30분이었다.
구글 앱은 10시 7분에 열차가 도착한다고 했지만 올지 안 올지 너무 불안했다.
만약 오지 않으면 어쩌지?... 근처에 숙박시설도 안 보이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레일패스 있다고 JR을 타고 올게 아니라 버스 타고 왔으면, 아니 애초에 여기는 안 왔어야 한다. 한번 와 볼만한 곳은 맞지만 이렇게 오밤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올 곳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9시 50분쯤 되자 사람이 들어왔는데 안심이 되는 한편 불안했다.
누군가 들어왔다는 건 열차가 온다는 증거니까 안심이 됐지만, 오밤중에 인적 없는 텅 빈 대기실에 단둘이 있는 상황이 묘하게 긴장되면서 불안했다. 서로가 불편한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불안을 감지하셨는지 다행히 그분은 밖으로 나가 계셨다.
몇 분만 있으면 열차가 오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돼도 열차가 오지 않았다…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그 분도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 열차가 늦게 온다라고 말을 거시고..
여하튼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 사실 되게 불안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도착 예정시간보다 한 10분 정도 늦게 열차가 도착했다. 밖에 계시던 그분이 열차가 도착했다고 알려주러 대기실로 들어오셨는데 그때 그분이 신의 말씀을 전해주러 온 전령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날 열차를 타고 하코다테 역, 그리고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 지금의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들 특히 뚜벅이 여행자 그리고 또다시 떠날 나에게 당부하고 싶다.
가이드 북 구석에 실린 장소는 가급적 가지 마시오.
외곽에 있다던지, 관광지로서 매력이 조금 덜 하다던지 등등의 이유로 메인 페이지에 소개되지 못하고 잘 신경 쓰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소개되는 이유가 반드시 있으니.
그곳의 어떤 매력에 홀려 짧고 소중한 여행일정을 쪼개 꼭 그곳에 가야만 한다면, 굳이 꼭 가야겠다면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고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