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에필로그

퇴사 후 3년이 지나서야 쓸 수 있었던 "그때"의 이야기

by missnow

첫 회사에서 5년 3개월간 근무하고 퇴사 후 다시 취업하기까지 8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이렇게 긴 공백은 내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래도 5년이라는 경력이 있는데 적어도 동종 업계라면 곧 취업할 수 있겠지 하고 상당히 안일하게 생각을 했었다.

여행도 다녀오고 배워보고 싶었던 것도 배우고 맘 놓고 3개월을 쉬고 난 후 재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퇴사할 때 다신 동종업계로는 가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기에 초반에는 내 경력과는 전혀 무관한 기업들에 이력서를 냈다. 하지만 내가 낸 이력서에 응답이 있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두둑해 보였던 퇴직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동종업계를 포함 내 경력이 어필될 만한 곳들에 모두 입사 지원을 했다. 그나마 연락이 오는 건 동종업계였으나 5년의 경력이 무색하게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5년 차의 태도와 능력이 아니었다. 거듭되는 면접 탈락에 내 자존감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고 어디라도 어떤 회사라도 좋으니 나를 써준다면 정말 불평불만 없이 일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여름에 퇴사를 했는데 겨울이 됐고 어느덧 해가 바뀌어 있었다. 내 통장 잔고의 숫자도 점점 줄어갔고 계약직 자리나 단기 알바라도 알아봐야겠다고 맘을 먹고 있을 때 면접 제의가 왔다.

빼어난 외모의 이사님과 아이같이 맑고 밝은 얼굴을 한 부장님은 자존감이 바닥으로 처박히기 직전의 나를 구원해 줬다. 8개월의 공백을 딛고 어렵게 두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나름 평판이 좋은 회사였고 첫 회사보다 좀 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라 나도 만족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빼어난 외모의 이사님은 사장님 친구의 따님이자 성격이 어마어마하게 XX 맞은 실무 경험이 전혀 없는 보는 눈과 감만 좋은 사람이었고, 면접 후 직장인 중에 얼굴에 찌든 티가 1도 없는 사람 처음 봤다고 친구한테 말할 정도로 해맑았던 부장님은 이사님의 대학 선배였다는 걸.

그리고 내가 들어간 팀은 그 실무 경험 없는 두 사람이 만든 신생팀이었다.

낙하산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의 인사에 반발한 기존 직원들은 퇴사를 한 상태여서 급하게 실무 진행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 뽑은 게 나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입사했을 때 인수인계 자료 따윈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을뿐더러 인수인계를 물어봤을 때 내게 욕을 했던 전임자를 보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어야 했는데...

사실 이 모든 걸 다 알고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정말 어딘가 일할 수 있는 곳이 너무 절실한 상태였다. 그땐...

아마 그 회사보다 더 힘든 곳이었더라도 별 불만 없이 다녔을 것이다.


나 이후에 입사한 사람들도 일반적인 사무직이라기보다 전문직 프리랜서들에 가까웠다. 그 말인 즉 슨 실무 처리를 할 수 있는 일반 사무 업무가 가능한 잡일꾼은 나뿐이었다.

내 위에 직책자가 3명이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운영해야 하는 건 나 혼자였다.

모든 일을 다 내 손으로 해야 했지만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그건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내게 어느 정도 책임과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실무를 모르는 직책자들은 많은 부분을 내게 맡겼고 또 그만큼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저것 간섭하는 것보다 나도 이편이 차라리 일하긴 편했다.

두 번째 회사에서 나는 일종의 슈퍼우먼이었다. 지구나 인류까지는 구할 순 없지만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와 얼마 없는 미약한 능력을 풀가동해 이 팀이 망하지 않게 고군분투하는...

초반에는 그래도 회사에서 기대와 지원이 있어서 일은 할만했다.

성격이 XX 맞은 이사님과 해맑지만 은근히 고지식하고 고집스러운 부장님을 감당하는 것과 이사님 눈밖에 나서 잘릴 뻔한 위기를 겪은 후 같이 일 좀 하자고 하면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한 줄 아냐며 당장 내게 침이라도 꽂을 듯이 윙윙거리는 기존 후임들과의 갈등도 힘들었지만 참을 만했다.

입사하고 나서부터 거의 매일 밤 야근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 불만이 없었다.


문제는 입사하고 1년 후부터 시작되었다. 뭐 흔히 드라마에서 봤던 스토리다.

회사가 해외 자본 투자를 받으면서 대주주가 바뀌었고 대주주 세력은 기존 경영진들을 몰아냈다.

이사님은 불안해하지 말라고 바뀐 대표님이 우리 사업을 계속 지원해주기로 했다고 이야기 했다. 만나봤는데 새 경영진들도 신규 사업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경영진이 바뀐 게 오히려 호재일 수 있다고. 더 큰 자본 투자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날 이후 이사님은 출근을 해도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기존 경영진들은 속수무책 물러나게 됐고 회사 전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재 점검이 이뤄졌다. 이때 많은 사업부가 정리가 됐다. 부서 하나가 통으로 날아가기도 했고 능력 좋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퇴사를 했다.

능력 없던 부장님은 정리해고가 됐고 곧 이사님도 회사를 떠나게 됐다.


이 와중에 매출도 안 나오고 팀의 반 이상이 계약직이라 정리해고도 수월한 우리 팀이 남아있던 건 오로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가 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정부 지원 사업이어서...

정부 지원 사업으로 많은 사업비용을 충당하고 있던 회사였고 앞으로도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자금 투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무사히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 팀의 프로젝트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더 큰 예산의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대다수 직원들의 인건비가 나오고 있는 다른 정부지원사업의 평가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그 이유 때문에 오합지졸이었던 우리 팀은 시한부로 살아남았다.

이사님은 퇴사하면서 내게 많은 짐을 남기고 가서 미안하다고 프로젝트와 팀원들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

성격은 XX 맞았지만 함께 지낸 1년 반 동안 일에 대한 열정은 진심이었던 사람이었다.

직장생활 경험이나 실무 경험은 없었지만 경험으로는 갖지 못하는 감과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이상을 구현해줄 팀원들과 지원해 줄 회사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그 사람의 계획을 실현해주기 위해 애썼으나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건 나뭇가지로 만든 초라한 움막집에 불과했고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제 손으로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고대 원주민 마을로 타임 슬립 한 현대인 같은 사람이었다.


그 사이에도 회사는 또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고 주인이 데려다 놓은 허수아비들이 교체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 사업자 등록증만 4번은 바뀌었던 것 같다. 당연히 우리 팀을 비롯한 회사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일하는 사람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프로젝트는 진행되어야 했기에 우리 팀은 아니 적어도 나는 쉴 틈이 없었다.

직책자가 2명이나 나가는 통에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해내야만 했다. 누구에게 상의할 수도 의논할 수도 의지할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처럼 화가 나고 그 화를 감추지 못한 날이 있었다.

그날을 나는 1차 괴물의 날이라고 명명했다.

1차 괴물의 날은 입사하고 1년 3개월 후에 맞이했는데 2차 괴물의 날은 그 후 불과 3개월 만에 맞이했다.

상황은 점점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전개로 치닫고 있었고 퇴사 하기 3개월 전은 정말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팀원들은 일하지 않는 자신들이 정당한 거라고 일하는 나를 되려 미련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막판에 월급마저 밀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설득할 명분조차 없었다.


그 때 나는 3차 괴물의 날을 맞이했다.

이러다 정말 내가 산산조각 나서 온전하게는 못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2월에 이 프로젝트의 결과보고가 끝나면 퇴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일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실력 좋고 사람좋은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들은 이제 좀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내가 책임감 없이 나가면 어떡하냐고. 우린 이제 손발이 딱딱 맞는데 이제 와서 내 자리에 누굴 뽑아서 다시 일하냐고. 팀 생각하라고 했던 사람이 누군데 네가 나가냐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그냥 영혼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마지막 남은 프로젝트 마무리에 집중했을 뿐. 그 프로젝트는 내게 이미 어떤 의미도 없었다. 나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월급도 안 나오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나가도 이 일은 결국 누군가가 다시 이어서 하게 될 거고 당장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않으면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타 기업에게 즉각적으로 피해를 주게 될 거고 그리고...

이 회사 처음 입사했을 때 모든 자료가 0 인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아니 사실 솔직히 어떤 이유에서건 다시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이게 하는 단초를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12월에 프로젝트가 끝난 후 회사에서는 이때다 싶게 남아있는 인원들에게 정리해고 통보를 했다.

굳이 사직서를 내지 않았어도 우리 팀은 12월 내에 정리될 운명이었다. 오히려 미리 사직서를 낸 게 무색하게 일을 마무리하느라 내가 대다수의 팀원들보다 더 늦게 나오게 되었다.



퇴사 이후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왔고 쉬고 있던 중 첫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상사분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고 있는데 같이 일할 생각 없냐고...

같이 일하자고 제안해 주신 것 자체로 너무 기뻤고 사실 내 실력으로 입사하기에는 허들이 높은 회사라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그렇게 기대 없이 소개해준 그분의 얼굴 먹칠이나 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고 면접을 봤던 회사에 운 좋게 아니 사실 그분의 영향력으로 입사하게 되었고 벌써 3년이 되어 간다.

사람의 인생은 때론 노력의 여하에 상관없이 전개되기도 한다.

운 좋게 어떤 순간에는 새벽의 고속도로처럼 별다른 노력 없이도 술술 풀리게 되는 때도 있는 것 같다. 이 회사서 보낸 지난 3년이 그랬다.

내 능력치는 어쩌면 내 모든 걸 쥐어 짜내서 일했던 그때가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나를 잃어버릴 정도까지 쥐어 짜내서 일하진 않는다. 그리고 자기 몫 이상을 해내는 동료들이 있다.

그래도 회사는 회사라 일하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건 아니지만 내일 당장 정리해고를 당한다해도 그간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할 정도로 이 회사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지난 3년 간의 내 삶은 아무 장애물이 없는 평탄한 시골길 같았다. 불안할 정도로 평화로운…

전 직장에서 개고생 한 나를 하늘에서 굽어 살피고 자 이번엔 좀 쉬어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안한 지난 3년이었다.

그 사이 나는 많이 회복됐다.

퇴사하고 한 1년간은 전 직장에 대해 떠올리는 것 자체를 금기하고 있었다.

풀리지 않은 매듭으로 가득 찬 실뭉치 같은 기억을 내 마음 한 구석에 쌓아 놓고 문을 걸어 잠갔다.

전 직장 동료들의 연락을 피했다. 그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퇴사 전까지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사이가 좋은 편에 가까웠다.

그 사람들이 싫어진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떠올리면 같이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 기억들이 너무 힘겨웠다. 아니 솔직히 그 사람들도 그 기억을 만든 일부라 한 번씩 연락이 올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졌다.

그 시절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지만 종종 그때를 곱씹고 있는 나를 막을 순 없었다.

지금 회사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3년 전 이사님이 하고 싶어 했던 그 프로젝트 였을때 그래도 역시 감은 있는 사람이었네라고 그를 떠올리기도 했다.

1년 정도 지난 후 내 상태가 좀 더 안정이 된 후에야 나는 마음에 문을 열어 엉망진창으로 쑤셔 넣은 기억들을 천천히 끄집어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때는 내 감정과 나의 힘듦만 보였는데 이제는 당시 상황이 전체적으로 보였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상태였고 감정이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괴물이 되고 있었을 때 내 감정밖에 안 보이고 나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힘들 때는 다 삐딱하게만 들렸던 그들의 말에 담겼던 염려가 이제야 뒤늦게 느껴졌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들은 괴물이 되어가는 나 조차도 평소와 다름없이 대해준 그냥 그런 모습까지 다 나라고 받아들여줬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가끔 내가 전 직장동료들처럼 적당히 뻔질대고 의욕 없는 태도로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행동이 단순히 태만이 아니라 이 일 자체의 성공 가능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허튼 노력을 하고 있지 않는 상태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쩜 그들은 영리했던 거다.

어차피 기울어진 배, 망하기 직전의 회사에서 발버둥 쳐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등바등거리고 있던 나를 그렇게 안타깝게 생각했었는지도...

가끔 내가 그들처럼 일할 때가 있을 정도로 지금의 직장 생활은 평탄하다.

아니 평탄했었다. 곧 또다시 폭풍우가 몰아닥칠게 보이지만....


3년이 지난 후에야 그때를 다시 돌아보고 있는데 이젠 그때만큼 괴롭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그들을 만나 하하 호호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평생 흉터처럼 남는 기억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망OOOOOOOOO했다.

망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봤지만 잠깐 상황이 좋아졌을 땐 우리 진짜 망할 뻔했어라고 웃기도 하다가 결국 그때의 우리는 그렇게 망했다. 한방에 망했으면 차라리 홀가분했을텐데...

결론은 망했다고 끝나는 이야기지만 망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애쓰고 전력을 다 했던 에피소드들이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한 컷 한 컷 고스란히 남아있다.

모놀로그 연극의 배우의 시점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3년이 지나서야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무대에 섰던 사람들의 모습을 관객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엉망진창으로 펼쳐지는 즉흥극 속에서 혼자만 적응하지 못하고 대본대로 연기하고 있는 무대 위의 나를 바라본다. 무대 위의 나는 엉망진창 전개 속에서 대본대로 이 극을 끝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다행히 엉망진창이었던 막은 끝이 났고 무대 위의 나는 괴물로 변하지도 산산조각으로 부서지지도 않고 안간힘을 쓰다 작은 상처만 입은 채 다음 막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내 인생이 몇 막까지 이어질지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끝나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건 있다.

어떤 시기가 정말 지옥 같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삶을 계속 이어 간다면 분명 좀 살만해지는 때가 온다는 것.


관객석이 앉아있던 나는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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