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2. 산과 실습
격무에 시달리는 것과 한량처럼 지내는 것 중 굳이 택일을 해야 한다면 고민 없이 전자를 택하겠다. 고작 세 달 정도밖에 실습을 하지 않았지만, 처음의 열정과 패기는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타성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가끔씩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실습을 하기 전에 나름대로 생각한, 매주마다의 목표가 있었다.(매주마다 글쓰기, 공부한 것들 정리하기, 실습중인 과의 국시 문제 풀기) 이런 것들은 오히려 일정이 빡빡한 과를 실습할 때 밀리지 않고, 잠을 줄여서라도 모두 했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널널한(?) 과일 때는 그만큼 늘어져서 까먹기도 일쑤였다. 아무래도 난 편하게 살긴 그른 것 같다.
산부인과 실습 일정은 총 3주로, 산과와 부인종양, 불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산과에서 주로 보는 수술은 제왕절개와 조산방지를 위한 자궁목 원형 결찰술이다. 산과는 고위험 산모들의 임신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그 후의 과정(예를 들면 감염관리, 임신 중 생긴 합병증 치료 등이 있겠다.)까지를 모두 담당한다.
하루는 산모 한 명에 20명가량의 의료진이 달라붙어 4시간가량 걸렸던 수술을 참관한 적이 있다. 환자는 30살 남짓한 몽골인으로 제왕절개를 이미 3번 했었고 더 이상 임신하지 말 것을 권고받았었다.(남편이 가장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반복된 출산과 수술로, 자궁벽이 얇아질 대로 얇아져 출혈의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음파 소견에서는 방광벽과 자궁벽이 거의 하나의 벽처럼 보일 정도인 데다가, 태반의 혈관이 그 벽에 파고들어간 상태라 출산을 한 뒤 대량 출혈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이런 고위험 산모에서는 혈관조영술을 이용해 주요 혈관을 풍선을 통해 색전시키고 수술을 하게 된다. 자궁을 주로 supply 하는 동맥은 uterine a.로, internal iliac a. 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해당 혈관을 미리 막아 놓으면 출혈이 덜하게 된다. 그렇다 해도, ovarian a. 에서의 10~20%에 이르는 혈액공급이나 collateral circulation에서의 실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다.(ovarian a. 는 복부대동맥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이것까지 막기는 힘들다.) 실제로 수술에서도 미리 embolization 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출혈이 있었다.
분만은 척추마취를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그 말인즉슨, 환자는 분만할 때까지는 의식이 있는 상태다. 환자는 수술방에 들어올 때부터 울고 있었다. 멀리 한국에서 수술받는 게 무서워서였을까. 워낙 위험한 수술이라 테이블 데스에 대한 설명도 들어서인지, 수술을 여러 번 받아 받음에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기는 다행히 무사했지만 산모는 그 후 처치에 2시간이 더 걸렸다. 몽골에서도 제왕절개술을 받았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유착이 심해 부인과 교수님 2명이 더 오셔서 말 그대로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복막을 열고 난 뒤 장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고 표현할 정도니 유착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산과는 이제까지 실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과 중 하나다. 아기가 첫울음을 떼는 출생의 순간은 기적이라는 말을 실감했고, 산후 산모들의 care도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임신 20주에 fetal abnormality(태아 기형)을 진단받은 분이 계셨다. 아마 양수검사를 통해 염색체 이상이나 혹은 초음파에서 구조이상이 있었을 것이다. 낙태는 태아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을 경우, 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임신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경우 등에 허용된다.(지금까지는)
20주 동안 몸속에 있던 아기를 지워야 하는 기분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교수님이 그분에게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인생을 사는 것은 여러 단계를 거쳐가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잘 자라서 학교도 가고,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대학도 진학하고, 직장도 가지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결혼까지 했는데, 그중 임신이 마음대로 잘 안된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는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행복해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의학은 논리 정연하다. 증상은 어떻고 주로 어떤 기전으로 그러하며, 그런 기전이기 때문에 어떠한 치료가 이루어진다. 어떠한 치료가 이루어졌지만 예외인 경우는 경험적으로 이런 점을 조심하도록 한다. 사실 이렇기만 하다면 수학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가장 큰 차이점이자 의학만의 매력은, 의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면서 서로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정보를 말해주지 않으면 의사는 진료를 할 수 없다. 얼마나 환자에게 공감을 하며 정보를 끌어낼 수 있는지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가임능력은 여성에서 35살과 40살이 중대한 고비이다. 20살 이전부터 초경이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법 긴 시간이다. 남자는 그에 반해 거의 평생 생식능력이 유지된다.
양막 파수 hx가 있을 경우 제왕절개를 하고 난 뒤 절개 부위에 감염이 호발 할 수 있다. 보호자는 납득을 하지 못한다. 병원의 과실인지, 원래 이런 경우가 있는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조차 할 수 없다. 단순히 운이 좋지 않았다고 하기엔 내가 보호자였어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불가피한 경우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며 할 말까지 다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대문 사진은 20주 차에 접어든 태아의 초음파 소견이다. 20주 차는 임신 2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태아 이상을 판별하기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태반의 위치나 성장도 고려된다.
Placenta Privia(전치태반)이 위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자궁의 fundus쪽에 태반이 자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figure of 8 muscle 의 수축을 많이 받지 않는 점. 그리고 전치태반의 혈관은 보통 자궁에 많이 invasion한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