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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May 26. 2019

귀여우면 다냐

Week 11. 소아과 실습(파견)

아기들은 다 귀엽다.


여기서 잠깐. 귀엽다는 것은 어떤 감정일까? 단순히 예쁘다. 잘생겼다 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2016년 5월에 옥스퍼드에서 진행된 연구(On Cuteness: Unlocking the Parental Brain and Beyond, Morten L. Kringelbach)에 따르면 아기들은 큰 눈, 통통한 뺨, 앙증맞은 코, 전염성 있는 웃음, 부드러운 피부 그리고 매혹적인 냄새로 우리를 유혹하는데, 이러한 모든 특징들이 '귀여움'에 기여하며 보호본능을 자극시킨다고 설명한다.


유아들이 생존하고 잘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든, 어떤 사람이든 끊임없는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눈으로만 보이는 특징뿐만 아니라 냄새나 소리가 귀여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흥미롭다. 강아지의 발에서 나는 꼬순내가 좋은 예가 되겠다.




파견을 나온 실습학생들은 보통 진료를 보는 선생님 뒤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보호자도 우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선생님도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이 눈에는 우리가 신기한지, 관심을 가끔 유도하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한다. 진료를 끝낸 후, 엄마의 가슴팍에 안긴 아이가 우리에게도 인사를 건넬 때는 정말 귀여워서 꼬옥 안아주고 싶을 정도다. (아기의 재채기 소리를 듣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파견을 갔다 온 뒤 버스를 기다리면서. 마치 짧은 여행을 떠난 듯 신났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한국은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가 2016년 기준으로 연간 17.0회로 OECD 35개 회원국 중에서 가장 잦았다. 이는 2위 일본 12.8회에 비해 4회 가까이 높은 수치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의료의 문턱이 낮아 국민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다는 말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나친 병원 이용으로 인해 불필요한 인력과 자본이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로컬에 개원한 의사분들의 병원에 파견을 가보면, 대체로 10명 중 6~7명은 증상이 거짓말처럼 똑같다. 전날 열이 조금 났었지만 지금은 괜찮고, 콧물과 가래가 있고 심하지는 않지만 기침도 한다고 한다. 체온계가 이상한 것 같다며 병원 체온계로 체온을 다시 재기를 원하시는 부모님도 계신다.(결과는 당연히 이상 없다.) 대부분의 경우, 대증 치료가 우선이다. 소아에서든 성인에서든 단순 감기는 진해제, 거담제, 혹시나 모를 감염에 대비한 항생제가 주어진다.


모두가 이렇게 별 일 아닌 감기만 걸리고 지나가면 참 좋겠지만, 의사의 역할이 필요한 질병도 있다. 반드시 단순 감기와 감별해야 하는 질환에는 독감, 폐렴이 있다. 독감의 경우 열이 난 뒤 적어도 12시간 후에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너무 일찍 데려오면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일단 경과를 지켜보고 열이 더 나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시 검사를 한 뒤,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하도록 한다. 항바이러스제는 발열 증상이 나타난 후 48시간 내에 투여해야 한다. 항바이러스제 중 타미플루는 소아에게서 환각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몇 주 전 감염내과를 실습할 때 이 부분에 대해 교수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아직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인플루엔자(독감) 검사 과정. 저~기 코 뒤 공간을 건드려야 하다 보니 의사 선생님은 하기도 전에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이는 당연히 세상 서럽게 운다ㅠㅠ(출처: NEJM)


폐렴 같은 경우는 청진 소견과 흉부 방사선 소견이 가장 중요하다. 앞서 말한 독감의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합병증으로 폐렴이 동반될 수 있다. 폐렴은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무슨 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원인인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학교나 유치원 등 단체생활을 하는 학령기 아동이 호흡기 증상을 보이면서 다형 홍반이 있는 경우에는,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을 의심한다. '폐렴'이지만 특이하게 피부에 발진이나 홍반 등의 증상을 보인다.


수두나 수족구병과 같이 감염 관리가 중요한 질환도 볼 수 있었다. 수두는 홍반, 구진, 수포, 농포 그리고 가피까지 모든 종류의 발진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며, 몸통에서 사지로 퍼지는 특징이 있다. 합병증이 동반되지 않는 경우는 항바이러스제가 불필요하지만, 13세 이상에서 발생한 경우나 가족 내 전파인 경우, 면역결핍이거나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환아에서는 Acyclovir 투여 적응증이다. 내가 본 환아는 수포가 딱지로 가라앉은 경우로, 격리가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수족구병 같은 경우는 Coxackie virus나 enterovirus가 원인균인데, 대증요법으로 치료한다.




인턴 중인 친한 선배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놀라웠다. 응급실에 미열인 37도의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님도 있었고, 단지 수액을 맞으러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권역 외상응급센터가 아님에도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은 환자를 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전국에는 17개의 권역 외상센터가 지정되어 있고, 사실상 이 곳을 제외하면 중증 외상시에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은 없다.) 테이블 데스를 한 환자 가족에게 '살인자' 소리를 들은 의사가 근처 편의점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밤늦게 술을 기울였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었다.


5월 22일 자로 소아 심장수술 재료인 인공혈관 공급이 재개되었다. 협상이 진행되기까지 한국 선천성 심장병 환우회와 대한 흉부외과학회가 가장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정부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정말 묻고 싶은 부분이다. 단기 관광객으로 입국한 외국인에게는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에 이르는 결핵 치료비를 모두 국가가 책임지면서, 대체 왜 자국민은 이런 일을 겪어야 할까?


학생의 짧은 생각이겠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의료가 더 붕괴되면 붕괴되었지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30년 후, 환자들은 지금보다 더 가벼운 질병이라도 치료하기 위해 대학병원으로, 나아가서는 빅 5에 더욱 몰릴 것이고, 외과 의사는 부족해져 지금은 며칠이면 기다리면 되는 수술도, 그 때는 돈을 아무리 줘도 의사가 부족해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시키는 나라인데 이 정도쯤이야. 근시안적인 자세가 아쉽고 또 아쉽다.


귀여움 논문 링크: https://www.cell.com/trends/cognitive-sciences/fulltext/S1364-6613%2816%2930042-0#%20 / IF는 15.402다.


의료비 관련 기사(“한국 결핵치료 공짜” 외국환자 우르르): http://news.donga.com/East/MainNews/3/all/20180306/88967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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