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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May 18. 2019

천천히 가자

Week 9, 10. 소아과 실습(NN/NEO)

#화가 난다든가 ,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한다든가 와 같은 격앙적인 감정에 휘말릴 때마다 티를 내지 않는 것은 어렵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러한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과 적당히 참고 넘기는 것 중 어떤 것이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다 보니 가까운 친구가 비슷한 고민을 토로해도 "에이 그러면 안되지" 등을 말하기가 민망하다.


과외를 하면서 만난 수많은 학생들 중 가장 답답한 유형은 공부하지 않는 학생이 아니다. 대답을 바로 하지 않거나(알든 모르든), 대답에 확신이 없는 학생이다.  모르는 것은 공부해서 알면 되지만, 본인이 의욕이 없으면 가르쳐 주는 입장에서도 참 힘이 빠진다. 주위에 이런 고충(?)을 말했더니 그래도 돈 받고 하는 건데 프로의식을 가지고 불평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가까운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 친구는 이런 답을 내놓았다. "프로의식을 가지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라고.


#겨울, 메디게이트 뉴스에서 실습을 하고 난 뒤 써놓은 글들이 오늘 기사로 실렸다. 나와 같은 의대생 인턴들의 글을 쭉 보고 있자니 잊고 있었던 꿈들이 떠올랐다. 사람의 욕심이란 것은 끝이 없고 간사하기 짝이 없어서 원하는 것 어느 것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힘이 빠지기가 부지기수다. 1학기 실습을 절반쯤 한 지금, 솔직하게 느낀 점을 말하자면 그렇게 끌리는 과가 아직은 없다. 그렇지만 이대로 그냥 흐르는 대로 살다가 무슨 과라도 하는 것은 견디지 못할 것만 같다.


대외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활동 그 자체도 있겠지만, 나와 비슷한 의대생들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알게 된 것이었다. 혼자 자취방에서 국제 보건이 왠지 괜찮겠다 싶어 WHO 홈페이지에서 인턴십에 대해 알아보고 나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직접 보건대학원 교수를 인터뷰하며 본인의 꿈을 재단해 나가는 것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인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오늘자(5/16)로 기사가 실려있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직감이란 게 있긴 한가 보다.


http://www.medigatenews.com/news/1048208285




소아과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 하나는, 소아는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인에서 혈액 검사를 하면 나오는 수치들도 신생아(1개월), 영아(1년), 그 후의 시기에 따라 모두 정상치 범위가 다르다. 신경 발달도 하루가 다르게 이루어지므로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반사들도 정해져 있다. 몸무게가 빠르게 늘어나므로 분유량도 항상 주의를 기울여 설사나 변비가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두개골의 봉합선이 아직 완전히 붙지 않았으므로 너무 한 방향으로만 눕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온도와 습도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에어컨을 켜고 옷을 두 겹 입히는 것보다는, 끄고 한 겹을 입는 게 낫다. 외래를 참관하면서 어머니들의 세심함에 놀람을 거듭했고, 새삼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듬뿍 들었다.)


본원 소아과는 총 크게 5가지 분과로 나뉘어 있다. 1학기에는 그중 2개, NN(Neurology/Nephrology-소아신경/신장)과 NEO(Neonatal-신생아)를 각각 1주씩 실습하는데, Neurology 파트에서는 주로 발달지연, Nephrology에서는 요로감염으로 인해 열이 나는 환아들을 보게 된다. Neonatal, 신생아 분과에서는 주로 미숙아에서 많이 나타나는 호흡 관련 질환인 RDS(Respiratory distress syndrome)과 TTN(Transient tachypnea of the newborn)을 공부하고, 미숙아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의학적으로 미숙아는 재태기간 37주 미만 또는 최종 월경일로부터 259일 미만에 태어난 아이들을 말하는데, 특히 폐 성숙이 완료되는 34주 미만에 태어난 경우는 자발 호흡이 어려워 폐표면활성제 치료와 양압환기를 받기도 한다. 산소 공급에 문제가 있는 신생아에서는 함몰 가슴, 빈호흡, 코 벌렁임, 그렁거림과 같은 호흡곤란 증상이 보이게 되는데 이는 RDS와 TTN 모두에서 관찰 가능한 소견이다. 주로 방사선 소견(TTN-Sunburst 모양 음영)으로 감별하며, 경과에 따른 예후로 판단하기도 한다.


2kg이 채 되지 않는, 태어난 지 일주일을 막 넘긴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소아용 청진기로 혹여나 깰까 조심하며 들었던 그 심장소리는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Diaphragm의 지름이 47mm 정도인 성인 청진기와 다르게, 소아용 청진기는 지름이 32mm 정도다(출처 : anymedi.co.kr)


평균적으로 10주 정도 빨리 세상을 만나버린 아이들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의학의 발전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영아(생후 1년 내) 사망률은 의학의 발전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호전되었다.(멀리 갈 것도 없이, 2005년 영아사망률은 출생아 천 명당 4.2명이었지만 2017년에는 2.8명이다-국가통계포털) 신생아 시기에 이런 고비를 넘긴 아이들에서 다음 넘어야 할 산은 발달과 관계된 문제다. 목을 잘 가누지 못하고 걸어야 할 시기에 잘 걷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운동 부분에서 문제가 있거나, 언어 습득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목은 3~4개월이 되면 잘 가누게 되고, 10개월이 되면 마마, 빠빠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발달지연이 있는 환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 때에 맞는 정상 행동을 보여주는지 여부이다. 예를 들어 15개월 남아가 5개 단어를 말하고, 입방체를 2개 쌓아 올릴 수 있으며, 혼자 걸을 수 있지만 층계는 올라가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면 운동치료가 필요하다. 보통 생후 12개월에 혼자 일어서 걸을 수 있으며, 15개월에는 층계를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언급한 것 이외에도 소아에서는 반드시 생각하고 체크해야 하는 것이 정말 많다. 원시 반사(모로 반사, 비대칭성 긴장성 경반사, Grasp 반사, 바빈스키 반사 등)는 제대로 보이는지, 선천성 검사에서 발견된 이상은 없는지, 몸에 혹여나 작은 반점은 없는지(신경피부증후군 중 커피색 반점과 관계된 신경피부종증의 유병률은 1/3500 정도로 드물지 않다.)와 같은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의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별 탈 없이 자라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다. 아기가 빨리 나오고 싶어 나온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보통 산모의 risk를 줄이기 위해 조기분만을 실시한다), 어머니의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 속에 홀로 있는 아기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려서부터 충분히 힘들었으니 부디 앞으로의 삶에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대문사진 출처 : https://happymephotography.com/ 

아이가 토를 자주 한다면 사진과 같은 자세로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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