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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씨바 Mar 12. 2024

아빠는 있잖아, 피파 인생 30년이야!

아빠가 피파 한 수 가르쳐 줄게

#1. 피파를 선물하다(어느덧, 23)

수명이 짧고, Pay2Win인 경우가 종종 있는 모바일 게임보다는 콘솔 게임을 플레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플레이스테이션을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게임들을 몇 개 선물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절대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당연히, 내가 직접 보거나 플레이하는 것으로도 그렇고, 그리고 게임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축구는 빠질 수가 없었기에,

축구 게임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시리즈들 중 내가 즐겨 플레이했던  EA의 FIFA 시리즈를 선물했다.(내 베프는 위닝을 좋아했으나, 난 늘 피파였다. 그리고 우린 아직까지도 위닝이 낫네, 피파가 낫네 이걸로 티격태격한다.)


선물한 때가 2022년 말이었으니, 내가 선물한 것은 당시 피파 시리즈 중 가장 최신작인 피파 23이었다.


하,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어느덧 피파 23이 되어있다.


어느새 잔뜩 들어버린 내 나이처럼,

피파 역시,

어느덧 23이라는 낯선 숫자와 함께 하고 있었다.



#2. 나, 피파 인생 30년이야!

아이들과 대망의 피파 첫 게임에 앞서, 아이들이 물어본다.


"아빠, 피파 해봤어? 피파 잘해?"

"사실 있잖아, 아빠 피파 인생 30년이야! 아빠가 처음 피파를 했던 게 피파 96인가 97이거든! 하하하! 내 인생이 피파고, 피파가 곧 나인 거지!!! 하하하!!"


순간 무척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나 자신이.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며 스마트폰이나 티비 등에서 문제가 생기면 늘 아이에게 부탁을 하곤 하는,

'퇴보자'로서의 아빠가

아직 그렇게까지 늙지 않았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내심 뿌듯했다.


그것도,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라는 카테고리가 아니던가?


게다가, 아이들이 모바일 게임으로서, 요즘 가장 선망하는 게임 중 하나인 피파 시리즈가 아니던가?


그 시절엔  PC에 CD를 넣어 피파를 즐겼고,

예전에 유명했던 해설위원 신문선 씨가 참여한 시리즈도 있었고, (분명히 송재익 콤비랑 같이 했던 시리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자료가 없다. 그 송재익 캐스터의 특유의 축구 경기와는 상관없는 그 엉뚱한 비유들, 예를 들어, 뭔가 위험한 플레이를 한 선수를 보며, 자갈밭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신문을 읽는 격이라던가... 등의 그 시그니쳐 코멘트들을 피파 시리즈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예약 판매로 산 피파02가 사양 때문에 기존 PC에서 안 돌아가, PC를 주저없이 사기도 했고.... (그래, 생각해보니, 그 나이 때의 나는 게임 때문에  PC를 주저없이 바꿨던 만큼, 게임에 진심이었구나. )


어쩌고저쩌고, 내 피파 무용담을 끝없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고,

모바일로는 몇 번 해보았지만, 콘솔 게임으로서의 피파는 처음 해보는 아이들은 피파 인생 30년 아빠 앞에서 잔뜩 주눅 든 채 게임을 시작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콘솔 컨트롤러 버튼을 익히는 것도 쉽지 않은 첫 경기인데,

본인들이 살아온 인생의 몇 배에 가까운 30년 동안 피파를 플레이해 온,

거의 준 프로 게이머 수준인 아빠와 첫 대결을 하게 된 것이다.



#3. 첫 대결

그래도 아빠니까,

핸디캡이라도 쳐주고자,

아이들은 스펙이 가장 좋은 팀 중 하나인 맨시티를 고르게했고,

그리고 난 타 리그에서 스펙이 형편없는 아무 팀이나 고른 뒤,

피파 1일차 아이들과 피파경력 30년 준 프로 게이머인 나와의 게임은 시작되었다.


경기 시작 전, 내 맘속으로,

그래도 애들 첫 게임이니 너무 크게 이기지는 말고,

그렇다고 대놓고 져주지도 말고,

한 삼대일 정도로 이겨주면 되겠다,

이런 생각으로 경기를 임했던 것 같다.


드디어, 경기 시작!!!


어?

이상하다.

이상하게도 플레이가 쉽지 않았다.


예전 기억으로는 상대를 농락했던 나의 화려한 드리블 기술은 어디 갔는지, 드리블 할라치면 바로 빼앗기고,

야심 찬 내 슛은 골대를 택도 없이 벗어나고

슛을 해야 할 타이밍에 패스를 하기도 하고...


이런 모습을 보며, 경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주늑들었고 긴장했던 아이들은 곧네 안심하기 시작했다.


PC로 피파를 주로 즐겼던 나는 키보드의 w버튼을 눌러 질주하고 싶으나

컨트롤러의 질주 버튼은 내 손의 구조와는 좀 맞지 않는 곳에 있어,

마치 내가 기타를 처음 치던 날, 코드를 잡지 못했던 것처럼,

버튼 누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4. 왜, 도대체 왜?

사실, 생각해 보면 시작 시점으로 치면 피파 인생 근 30년이 맞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실 중간에 공백 기간이 너무 길었다.

20여 년은 피파를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피파 시리즈는 30년쯤 전에 시작했으나,

총 플레이 년수는 10년 정도 되는,

그리고 근 20년 동안은 한반도 플레이를 안 해본 사람,

이것이 내게 맞는 표현인 것이다.  


게다가 이건 또 키보드가 아닌 컨트롤러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 부분은 미리 생각을 해보기는 했으나, 위에 적었던 그 친구의 꼬심으로 위닝에 한참 빠져서 동네 플스방에서 미친 듯이 컨트롤러로 위닝을 했던 시기가 있어서,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위닝에서의 기본 세팅과, 플스에서이 기본 세팅이 달라서, 위닝에서의 슛 버튼이 피파에서는 패스 버튼이고 등등의 차이는 있었지만, 뭐 이정도 차이는 금방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은 이미 게임 쪽으로는 "현격한 진화"를 한 세대이다.


컨트롤러를 양손으로 잡기에 부족한 고사리 같은 손이었지만,

우악스러운 나의 손보다,

훨씬 더 컨트롤러를 잘 다루고 있었다.




결국, 피파 인생 30년인 나는 피파 인생 1일 차인 아이들에게 경기를 처참하게 지고 말았다.


내 팀을 보다 좋은 팀으로 해서 재도전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과도 충격적이었는데,

아이의 말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빠! 아빠가 피파 인생 30년이라고 했잖아? 그러면, 아빠는 인생을 좀 낭비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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