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미스터리가 아니더라도...

by 뉴작

미술계 용어로 '데페이즈망'이란 말이 있다.

원래 '고향으로부터의 추방, 낯선 느낌, 환경의 변화' 등을 의미하는데,

초현실주의 회화에서는 '일상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란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래서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재창조시키는 마력을 가진 사람들 같다.



초현실주의 화가로 대표적인 사람은 르네 마그리트다.

국내에서도 제법 인지도 있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이자,

도슨트들은 그를 장난기 많은 철학자라고 많이 칭한다.

아무래도 본인의 작품들에 자신의 철학적인 생각을

시각적으로 절묘하게 잘 표현해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적인 그림을 얘기하자면,

중절모를 쓴 중년의 남자 얼굴에

왼쪽 눈만 아주아주 살짝 보인채 청사과로 떡하니 가려놓은 그림.

지금 머릿속으로 상상하시는 분들 중에

아하~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작품 이름은 <사람의 아들>이다.

작가는 뭔가 자화상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중요한 얼굴의 대부분을 청사과로 가렸다.

자화상의 익숙함에서 벗어난 예상치 못한 그림이다.

초현실주의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즐기기도 하는 것 같다.

보는 사람들에게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은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늘 보통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또 유명한 것은,

"잇츠 레이닝 맨"이라는 팝송 가사가 딱 떠오르게 만드는

하늘에서 비가 아니라 중절모를 쓴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오는 그림이다.

이 그림 역시 아하~ 하시는 분들 있을 것이다.

작품 이름은 <골콩드>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좀 징그러울(?) 수도 있는데,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명이 <골콩드>인 이유는,

14~17세기에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이름을 떨친 인도의 도시이자,

한때 남자들이 차고 넘쳤던 도시인 '골콩드'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왜 초현실주의 화가 이야기와 작품 이야기를 하냐면,

가끔 그들의 이런 낯선 관점들이 심히 부럽기 때문이다.

방송을 만들고 있는 우리 같은 방송쟁이들도

익숙한 이슈들, 주기별, 시즌별, 국가의 이벤트별로

루틴 하게 돌아가고 있는 익숙한 이야기들 속에서

때론 익숙하지 않은 낯선 관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숱한 텍스트 속에서 영감을 받으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우리의 익숙한 회로를 낯선 회로로 바꿔

장착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요새 가끔 나에게 낯선 관점을 선사해 주는 건

우리 아들이다.

나의 익숙한 관점을 전혀 다른 낯선 관점으로 본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어떤 현상을 보는 시각도,

사람에 대한 평가도,

가끔은 우리의 익숙한 관점과 너무나 다르다.

그 관점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14살 우리나라 중학생

달리 말해 청소년의 관점으로 낯설지만, 의아하고,

때론 참신할 때도 있다.




그러고 보니,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도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남기긴 했다.

"나는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고

바스키아는 낙서 스타일의 그림이 많은 작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뉴욕 길거리 벽에 그려진 낙서>라는 작품도 있다.

바스키아 역시 익숙한 어른의 그림이 아닌,

낯설지만, 신선하고 새로운 아이의 그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던 것 같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무언가 미스터리해 보이는 건

고정된 사물이나 인물에

익숙지 않은 낯선 관점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낯섦에 있어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긍정적이고, 찬사가 이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응을 보이는 건

아마도 그 과정이 말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

짐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의 목적은 미스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말했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처럼

우리에게도 가끔은 낯선 관점이 매우 필요할 때가 있다.

방송을 예술이라 말할 수 없어도,

방송의 목적이 미스터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 오늘의 속삭임>


창의력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앙리 마티스)


'모마 미술관 도슨트 북 그림들' - SUN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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