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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Apr 05. 2024

예약이 소용없는 곳

소아정신과입니다. 

며칠 전부터 카톡에는 아이들의 예약사항 알림이 온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예약. 예약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초진은 매월 1일 4개월 후의 예약을 전화로 해야 한다. 수백 통을 걸어야 겨우 연결되는 전화. 그나마 연결이 되어서 예약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조금만 늦게 전화해도 금방 마감되는 예약. 


아이들이 다니는 병원은 동네에 있는 종합병원이라 그나마 예약이 쉬운(?) 편이고, 서울대 같은 유명 병원의 경우 태어났을 때 예약해야 4,5살 돼서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첫째가 처음 병원을 갔었던 3년 전만 해도 이 정도로 어렵진 않았다. 처음 예약 시 2달 정도만 기다리면 될 정도였고, 그나마 빈자리 연락을 주셔서 2주 만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그 3년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코로나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나서 경제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정신과에 앉아있는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들. 지쳐버린 그들의 얼굴과 어깨에 무거움이 느껴진다. 

거기에 나 또한 포함되겠지. 


'지역사회 바우처'라는 것이 있다. 아이들 상담을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아 진행하는 것인데, 진단서가 필수다. 진단서는 아이동반이 필수고, 지역사회 바우처의 공고는 연초에 나는데 언제 날지 모른다. 


기껏 아이들과 병원을 다녀왔는데, 며칠 후에 공고가 났다. 병원 예약날은 한참 남았지만, 서류 확보를 위해서 예약을 당겼다. 예약시간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전 11시. 세 아이는 오늘 학교를 못 갔다. 

11시에 맞추려 택시를 타고 부랴 부랴 도착한 병원. 

길고 긴 기다림.. 정신과는 상담 시간이 개인별로 천차만별. 앞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가늠이 안되기 때문에, 예약시간은 딱히 의미가 없다. 

하지만 오래 기다릴 것을 알아도 시간 지나서 도착할 수는 없다. 


결국 오늘도 1시간이다. 10시 50분쯤 도착한 우리 식구는 첫째가 11시 40분에 진료를 보고 쪼르르 둘째, 셋째가 진료를 본 뒤 나까지 선생님과 상담하면 끝이 난다. 

꼬박 1시간을 병원에 머무른 뒤 끝난 진료. 


다른 병원 대기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신과 대기는 특히나 힘들다. 주변에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뿐더러 계속 말을 하는 아이, 노래 부르는 아이, 돌아다니는 아이.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는 누구 하나 그들에게 눈총을 주지 않는다. 모두가 힘듦을 이해하기에. 모르는 사이지만 그들의 무거운 어깨를 한번 두드려 주고 싶기에. 혹은 그것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자신의 짐도 무겁기에. 


이야기해 주고 싶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잘못 키워서가 아니라고. 그냥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도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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