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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Aug 21. 2022

_밤산책-1

: 아홉번째이야기, 프롤로그







까만밤



이곳의 밤은 까맣다.

습습한 바람결에는 낭랑한 풀벌레소리가 묻어있고

살랑이는 나뭇잎은 단조로운 밤하늘에 리듬을 수놓는다. 

    

비에 젖은 기다란 나무의자 위에는

민달팽이 한 마리와 내가 나란히 앉아있고

담 너머에선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하루 지나온 풍경과 시간들은

까만 밤, 어둠 속에 숨어있는 별처럼

하나의 비밀이 된 듯 했고

나는 서슴서슴 망설이다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음에 발견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마당에는 어느새 고양이 두 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숙소 문 옆에 놓인 물그릇에서 잠시 목을 축이다가

낯선 향기에 이끌려 마당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경계,

그리고는 다시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와인병과 창문과 실외기, 거울과 대문과 의자가

흰 벽을 캔버스삼아 구성된 한 점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까만 밤이 있었다

누군가 준비한 듯한,

그러나 깊이가 보이지 않는, 아주 까만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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