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서, 착한 게 아닙니다>
<1>
밀크티를 사 왔어요. 가는데 30분 오는데 30분. 빠른 걸음으로, 태풍을 뚫고 걸어갔다 왔어요. 태풍의 눈을 제가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제 머리칼이 완전히 땀범벅이 돼있다는 건 확실했죠. 동생은 저보고 밀크티 란에서 초코 밀크티를 사 오라고 했어요. 900원 짜리라고 했으니, 아마 스몰 사이즈였을 거예요. 근데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한 번 마시는 거 거하게 마셔야죠. 안 그래도 비 오는 날, 기분도 처지는데 아니, 쳐졌을 텐데. 그래서 저는 몰래 토핑 두 배 더에 사이즈는 제일 큰 XL로 업그레이드 시켜 왔답니다.
<2>
밤이 깊었습니다. 날씨는 추운데, 동생은 집에 들어올 만한 시간을 훌쩍 넘겼네요. 저는 걱정이 됐죠. 동생은 옷도 가볍게 입고 나갔거든요. 감기에 걸리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문자를 했어요. “이제 집에 들어와야지? 춥잖아.”
다음날 동생이 제게 말하더라고요. “오빠! 어제 친구가 오빠하고 나하고 문자 나누는 거 봤어. 근데 걔가 그러는 거야. 오빠가 만화 속에나 있는 오빠라고. 만화 오빠.” 말은 즉슨 제가 너무 다정해 보여서 그랬다네요.
<3>
인절미 카스텔라를 사 먹었어요. 너무 맛이 있는 거 있죠? 이게 미각에 남아 다음날까지 안 잊히고 버티지 뭐예요? 아, 동생도 이 빵을 먹었어요. 동생은 이 빵이 또 먹고 싶었나 봐요. “오빠! 오늘도 인절미 빵이 먹고 싶어!” 저는 시간이 되니 걸어서 다녀오기로 했죠. 도보로 왕복 1시간 걸린다고, 비 온다고 안 가겠어요?
실은 저도 이 빵이 당겼거든요.
주위에서는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오빠가 정말 착하네요?”, “정말 다정한 오빠군요!” 저는 미소로만 답했어요.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요. 힘든 일도 아니고, 이런 사소한 일로 칭찬을 받다니요.
독자님. 제가 착한 것일까요? 제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동생이 착해서 저도 착해진 것이에요.
예를 들어볼 게요. 당신은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누구에게나 그런 말을 들어왔죠. 지나가다가 힘든 사람이 보이면 고민도 않고 돕고,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발이 체 바닥에 붙기도 전에 찾아가 인사를 하고. 그 정도로 착한 사람이에요. 그런 당신이 한 회사에 들어갔어요. 그 회사에서 한 선배를 만났죠. 그런데 그 선배가 당신을 함부로 대해요. 막 뭐라고 구박을 해요. 욕도 하고요. 한 마디로 못 살게 구는 것이죠. 그렇다면, 당신은 ‘항상’ 그랬듯 착할까요? 그 선배 앞에서 웃으면서 깍듯이 정중을 지킬 수 있을까요? 단언컨대 아닐 거예요. 제가 전에 이 상황에 있어봤거든요. 아무리 노력해도 저를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고, 함부로 대할 사람은 함부로 대하더라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에요.
듣기로, 어떤 학파였는지 모르지만, 한 학파는 인간의 행동을 심리와 환경의 상호작용이라고 본대요. 즉, 그 사람의 마음도 마음이지만, 환경에 따라서 마음이 바뀐다는 것이죠. 정말 착한 사람이어도 옆에서 함부로 대하고 막 대하면, 불친절하고 냉혹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무리 심성이 고와도 불편한 사람들과 있으면 충분히 아니 고와질 수 있다는 거예요.
모르시겠지만, 제가 밀크티를 사 가면요. 동생은 꼭 반을 줘요. 그냥 주더라고요. 나눠먹고 싶다고요. 제가 빵을 사가도 꼭 반을 나눠 줘요.
하하. 제가 착한 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