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동남아 여행
한 달여의 동남아 여행에 동행하게 된 친구의 전달사항은 간단했다. 최소한의 보따리로 가볍게 이동할 것.
친구와 나는 기내용 캐리어와 소지품 가방만 소지한 단출한 짐으로 다니기로 했다.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로 계속 이동하기로 했기에 가벼운 짐은 가장 절실했던 비용 절감과 직결된 문제였다. 친구는 이동할 때마다 늘어나는 짐을 체크하기 위해 휴대용 저울까지 구매했다. 각자 짐은 7킬로그램을 초과해서는 안 되었다.
자체 중량만 3킬로그램을 넘어서는 캐리어에 담을 수 있는 짐은 옷가지 몇 벌 뿐이었고 세면용품조차 휴대용으로 골라서 넣어야 했다. 떠나는 전날까지 짐은 우선순위를 바꿔가며 캐리어를 수없이 들락거렸다. 가까스로 6.8킬로그램에 맞춰 꾸려진 가방 안에는 몇 벌의 티셔츠와 바지, 세면도구, 기본 화장품, 속옷, 필기구, 우산, 상비약 정도만 채택되었다. 이삿짐에서도 가장 구박받는 책과 나만의 1호인 노트북은 당연히 저울의 첫 번째 탈락 목록이었다.
처음에는 여행 출발을 앞두고 들뜬 우리 마음만큼이나 짐 무게는 가볍게 느껴졌다. 오히려 정작 필요할 것만 같은 필수품들을 놓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예상보다 지체된 티켓팅에 가까스로 탑승하기 위해 보따리와 함께 전력 질주했던 인천 공항에서부터 점점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스콜을 만난 첫 여행지 다낭에서는 없던 큰 우산이 추가되었고, 가볍다고 여겼던 7킬로그램 짐이 빗속에서 뒤뚱거렸다. 베트남 6개 도시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는 일정 속에서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는 날은 팔이 결려오고 여지없이 몸살이 났다.
이후 여행에서 최대 과제는 짐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고 쇼핑 욕구를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었다.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기념품도, 절호의 득템 기회였던 커피 핀마저도 만지작거리다 제외되었다.
이미 여러 번의 여행으로 익숙해진 친구는 현지에서 값싼 옷을 사서 입고 버리는 식으로 짐을 줄이고 대신 최소한의 쇼핑리스트를 채웠다.
먹고 보는 것으로만 채워진 여름 여행지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방에 들어갈 수 없어 짐이 되는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간절한 소유들만 겨우 간택되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거의 반강제이다시피 소박한 짐으로 꾸려가는 여행자로 지내게 되었다. 현지에서 필요한 것들로만 간단하게 사는 삶은 무겁지 않았다. 여행이라는 특성상 닥치는 대로 부딪히겠다는 각오는 기본 장착되어 있으니 상황에 맞춰 불편에 적응했다. 대신 현지에서 주는 새로운 '여기'에 충실할 수 있었고, 더 멀리 나아가는데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엑기스 같은 생필품으로만 지낸 미니멀한 한 달을 보내고 돌아온 일상에서도 이전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아 졌다. 비우고 덜어낸 삶이 주는 자유로움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한 달 여행에서 내가 갖게 된 가장 큰 소유는, 살아가면서 정작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무소유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