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우리 몸의 세포에 붙으면, 다음 단계는 세포 안으로의 침투(penetration)이다. 외피가 있는 바이러스는 우리 몸 세포의 막과 융합을 통해, 외피가 없는 바이러스는 세포막 용해를 통해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외피가 있는 바이러스가 막 융합을 통해 침투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다시 나뉜다. 막끼리 직접적으로 융합하거나, 우리 몸 세포의 수용체를 통해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막끼리 직접 융합하는 방법은 세포 표면에 바이러스 외피 단백질이 남기 때문에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복잡한가? 그럼 이것만 알아도 된다. 융합하거나 용해하거나.
<출처: 바이러스학, 류왕식, 라이프사이언스>
사관생도가 되기 위해서는 정식 입학 전에 약 5주 간의 가입교 기간을 거친다. 일종의 OT 겸 적응 기간이다. 체력을 점진적으로 올리고 군인이 되기 위한 훈련과 교육을 받는다. 남자들이 입대하면 자대 배치 전에 받는 기초훈련 같은 격이다.
사관학교가 고등학교처럼 교복 입고 다니는 학교라고 생각했던 나는 가입교 첫날부터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리바리 전투복을 받아 입고 K2 소총이 손에 쥐어졌을 때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왜 총을 나눠 주는지 모르겠다고 수양록에 남긴 다음날 소대장 생도에게 불려 가 긴 상담을 받았고, 나는 그제야 내가 어떤 길에 들어섰는지 알게 되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으면 기숙사 한가운데 걸려있는 종을 치면 되었다. 빽빽한 일과 중에, 종이 걸려 있는 라운지까지 가서, 종 앞에 섰을 때 쏟아지는 시선을 감내하고, 과감하게 종을 흔들어야 했다. 해마다 한두 명이 종을 친다고 했고, 나의 가입교 동기 중에서도 한 명이 종을 흔들었다. 포기하겠다는 용기의 신호가 댕댕 울렸을 때 내 마음도 하릴없이 흔들리는 종처럼 덩달아 허우적댔다. 훈련도 힘들었지만 내가 여기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군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군인이 어울리는 사람인지 확신이 없었다.
체력을 키우고 군사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누구보다 군인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동기, 선후배들은 나에게서 여자를 발견했다. 감정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것. 잘 웃고 잘 찡그린다는 것은 군인으로 근무하는 내내 나를 평가하는 꼬리표였다.
군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들이 말하는 참군인이 되기 위해서 감정을 지워야 했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 하지 않고, 울고 싶어도 울면 안 되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하고 답답해도, 울고 싶어서 목구멍이 꽉 조여와도 표현하면 안 되었다. 그마저도 통제할 수 없을 때면 세면장에서 애먼 세수만 해댈 뿐이었다.
겉으로는 큰 문제없이 평범한 성적과 평범한 평가를 받으며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을 했지만, 내내 내적 방황은 계속되었다. 내가 진짜 군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내 부하를 통솔하고 나라를 위해 일할 역량이 있는지 내 마음속 자체적인 검열과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군대라는 조직에 수용될 수 있는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제대를 하고 나서 돌아본 군대에서의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나의 강점을 아는 것'이 군 적응에 중요한 키(key) 였다는 사실이다. 군대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지 말고, 군대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았다면 보다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게 나와 군대를 잇는 수용체가 아니었을까?
과거를 돌아보니 현재가 보인다. 지금 내가 고민하는 나의 정체성 말이다. 무작정 부딪치고 보는 건 지금 내 형편에 맞지 않는다. 바이러스도 외피형, 비외피형에 따라 세포에 침투하는 방법이 다른데 하물며 사람이 업에 임하는 자세의 다양성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고 힘들게 파고들지도 말고, 나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는 자리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마음먹으니 새로운 길이 눈에 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를 찾을 것.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를 녹이고 스며들 것.
바이러스에서 찾은 방식을 가이드 삼아 내 스타일대로 가보련다. '무슨 바이러스에서도 교훈을 찾나?' 생각할 사람들의 시선을 상상하니 조금 움츠러든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것도 내 방식인 것을. 사소한 것까지 '왜?'를 고민하고 늘어지는 생각쟁이인 것을. 이런 나를 수용해 줄 수용체도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래, 그렇겠지.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