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여름_생각은 생각대로 생각되지 않는다.

다 안다고 여기며, 대강 넘어가는 것. 그 또한 자만.

by Juco




여기서 잘 던지면, 네가 승리투수야.



그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를 준비했고, 마운드에 올랐다. 달랐던 것은 오로지 코치로부터 공과 함께 건너온 말 한마디뿐이었다. 여기서 잘 던지면, 네가 승리투수야. 그는 몰랐다. 이제까지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기록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는 이제 알았다. 평소와 다름없던 무대가 평소와 달라졌다. 사뭇 모자를 고쳐 쓰고, 넘겨받은 공을 두 손으로 강하게 비빈다. 평소처럼, 그리고 '승리'라는 그 이름을 얻기 위한, 이제까지와 똑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한 걸음.



신경 쓰지 말고 평소처럼, 하던 대로만 해.



코치가 돌아서며 던진 마지막 말이 롤러코스터처럼 마운드를 휘감는다. 몇 번이고 되뇌이며 나를 '평소처럼'으로 데려가려 애쓴다. 그저 하던 대로만. 기회가 왔으니, 이렇게나마 준비된 자로서 경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소소히 축하를 받고 있었다. 일말의 아쉬움이 스쳤지만, 그게 무엇인지 당장 선명히 떠오르진 않았다. 어쨌거나 경기를 무사히 마쳤고 ‘승리투수’를 얻었으니, 그는 이로부터 자신이 해왔던 것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낀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다.


좋아. 계속 이대로만 하자.


물론 하던 대로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한다고 했지만, 평소와는 미묘하게 달랐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분명 평소와 달랐음에도. 그는 ‘하던 대로 하자’는 생각을 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으니 나는 생각대로, 평소처럼 해냈다고 믿으며 오늘을 그냥 덮는다. 설사 달랐다한들 어쩌겠는가. 중요한 순간에 놓였을 때, 많은 우리가 가장 쉽고 빠르게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하던 대로만 하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평소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긴다. 다만, 짙은 아쉬움은 그토록 꿈꾸던 순간에 정작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무대가 끝난 후에야 그것을 깨닫는다는 것.






좋아, 이번에도 평소처럼 하자.



그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를 준비했고, 마운드에 올랐다. 달랐던 것은 오로지 지난 경기에서처럼 팀과 팬,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는 몰랐다. 이제까지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이런 마음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는 이제 알았다. 평소와 다름없던 무대가 또 평소와 달라져버렸다. 사뭇 모자를 고쳐 쓰고, 넘겨받은 공을 두 손으로 강하게 비빈다. 평소처럼, 그리고 ‘기대에 부응’이라는 마음을 얻기 위한, 이제까지와 똑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한 걸음.



하던 대로. 내가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앞선 경험은 늘 훌륭한 학습인 양 남아버리니, 되뇌임은 깊이 파인 홈이 된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하던 대로 하자고, 머릿속은 분명 그렇게 가득 차 있건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괜찮지가 않다. 그래도 그저 평소처럼, 하던 대로만. 기회가 왔으니, 이렇게나마 준비된 자로서 경기를 맞이한다. 정신없이, 그리고 힘겨이 경기를 마친 그에게 실망스런 결과만큼 불필요한 말들이 스쳐 다닌다.


긴장했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대로만 하지 그랬어.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계속 하던 대로 하면 돼.


똑같이 한다고는 했는데, 무언가가 계속 그를 불편하게 했다. 그 와중에 하던 대로 하고자 했던 것들 역시 실은 껍데기뿐이었음을 느낀다. 분명 평소처럼, 하던 대로만 하자고 생각하며 집중했는데. 왜 그렇게 되지 않은 걸까. 우린 수학 문제가 아닌, 스포츠를 하고 있기에 그냥 그랬던 날일 뿐인 걸까. 찜찜함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다시 그 상황이 됐을 때 역시나 또 그렇게(어쩌면 더욱 절실하게) 하던 대로 하자고만 생각하면 하던 대로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짙은 아쉬움은 생각이 생각대로만 생각되진 않는다는 것.




감히 단언컨대, 우리가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 놓은 최적의 상태 안에 '하던 대로, 평소처럼'이라는 생각은 없다. 그것을 되뇌이는 순간도 없다. '평소처럼, 하던 대로만 하자!'라는 말속의 간절함을 모르는 척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짧은 찰나조차 우리는 '진짜 우리'로서만 머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주문은 더욱 명료하고 뚜렷해야 한다. 특히나 안밖으로 의도치 않은 생각과 감정들이 요동치는 순간에 우리는. 우리가 진짜 해야 할 '그것'을 주문해야 한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에겐, 우리가 매 순간 무엇에 집중하는지 도무지 알 리 없는 타인이나 외칠 법한 '평소처럼! 하던 대로!'라는 흐리멍텅한 주문보다, 원래 나는 지금 뭐 했었지? 라고 묻고, 그것에 답하는 것이 우리를 진짜 우리의 모습으로 데려가는 가장 단단한 길일지 모른다.







그라운드에 발을 디딜 때부터, 경기를 마치고 내려올 때까지. 단 한순간의 놓침 없이.

가장 좋았던 경기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집중했는지.

앞으로의 경기에서는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집중하고 싶은지.

[평소처럼], [하던 대로]가 무엇을 뜻하는지 쪼갤 수 있는 만큼 쪼개고, 쪼개어.

해보고 또 해보기. 우리 또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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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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