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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Jul 21. 2021

끝없을 3박자

<Jazz Suite No.2 -Waltz 2> by  쇼스타코비치

https://www.youtube.com/watch?v=phBThlPTBEg







  열몇 살 때 누구를 좋아한 적이 있었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아이라 운이 좋으면 마주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 학교를 가는 길이었어. 

 그날따라 너무 일찍 집을 나섰는지 수두룩했던 친구들의 발걸음은 보이지 않았지만, 처음 보는 여자 아이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친구를 향해 소리 지르고 있는 것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어.

 

"빨리 나와, 기다릴게."


 누구에게 얘기를 하는 건지 본능적으로 시선이 가더라고. 나도 고개를 돌려 올려다봤어. 4층이었지.

 

아!


 그 여자아이였어. 잠옷바람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지, 한 손으로는 눈을 비비고 다른 손은 크게 흔들어대며 친구의 부름에 답을 하고 있었어. 

 쿵! 하는 심장 하강에 이어 눈앞에 큰 별 하나가 번쩍! 하고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졌지 뭐야.

 별은 꿀밤을 맞을 때만 등장하는 게 아니더라구. 차이라면 

 꿀밤을 맞고 나면 북두칠성, 

 '크러쉬 온 유'일 때는

 목성 정도 크기의 행성 오직 하나라는 것?


 충격적이고도 순간적인 심쿵함은 그때 이후 없었던 것 같아. 미안하지만 널 처음 볼 때도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화낼 거야?

 내 눈에 별이 안 보여서?

 설마 이대로 끝내겠어? 그러다 널 놓쳐버리면 어떡하려고. 

 걱정하지 마.

 

 책으로 말해볼까?

 그 아이는 베스트셀러였고

 넌 스테디셀러가 될 테니까.


 우리 이제 시작이잖아. 

 당신이라는 양파는 이제 껍질을 두어 번 깠을 뿐이잖아. 무궁무진한 겹이 기다리고 있잖아.

 매워서가 아닌 기뻐서 눈물을 흘릴 날들이 지금부터 열리는 거잖아.


 왈츠의 선율이 들리지 않아? 

 끝없이 연주하라고 할게. 손잡고 뱅글뱅글 도는 거야, 영원히.


 알았죠 당신? 




 

 쿵 짝짝. 쿵 짝짝.

 참 경쾌해요. 그렇지 않아요, 왈츠란 것은?

 전쟁에 패해 시름에 빠져있는 국민들을 위로하려고 억지로 밝게 만든 왈츠도 있다고 하지만 

 3박자의 운율을 입으로만 맞춰봐도 이렇게 감미로운 걸. 

 그런데 말이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는 유독

 나풀대다가도 알 수 없는 슬픔이 코팅되어 있어요. 적어도 난 그렇게 느낀답니다.

 하긴 흥겹고 설레는 과정이 한결같을 리 만무합니다.

 

 당신을 알게 되고, 서로의 호감을 확인하게 된 뒤라도 불안함은 여지없이 끼어드는 법이죠.

 그러나.

 한 발 물러나 불안함으로 온몸을 떨게 되는 것도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하려는 큐피드의 계략 일지 모른답니다. 

 그러니

 문득 엄습해오는 불안함도 사랑할 수밖에요.

 

 음악도 사랑도

 높낮이가 있고 반전이 있으며, 위기가 있고 극복할 무엇이 있는 과업인 것을.


 아아 당신의 직업은

 아니, 천직은


 날 떨리고 설레게 만드는 것. 그러려고 태어난 사람.


 Vice Versa!


 왈츠의 실타래를 휘감으며 스텝은 계속됩니다.

 우리는 지치지 않을 겁니다.


 쿵 짝짝.

 쿵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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