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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28. 2023

어느 날 둘째(B)가 채식주의를 선언했다!

돼지에 푹 빠진 날

작년 10월 날씨도 쌀쌀해지고 갑자기 맛있는 치즈 생각이 나서 가끔 가는 치즈농장에 치즈를 사러 갔다. 영국은 체다 치즈가 참 맛있다. 이 농장은 지역에서 생산한 우유를 가지고 직접 치즈를 만든다. 종류는 일반 체다와 스모크체다로 맛이 일품이다. 첫째는 치즈를 좋아하지 않아 둘째만 데리고 농장에 갔다. 마침 농장의 넓은 초원에 돼지 세 마리가 너무나도 한가롭고 평화롭게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닭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창 밖으로 넓은 초원에 양철로 된 헛간 같은 것이 군데군데 보여서 남편에게 물어보니 돼지집이라고 했다.  초원에 띄엄띄엄 양철로 만든 돼지 한 두 마리 정도 들어가는 헛간 같은 돼지집이 있는 게 '여기 돼지는 삶의 수준이 참 높구나!'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그런가 돼지고기 요리를 하면 되지 특유의 냄새가 매우 강했다. 한국에서 먹던 돼지고기는 이 정도까지 냄새가 강하진 않았었다. 영국 돼지를 먹고 자란 남편이 영국 돼지고기는 냄새난다고 싫어했다.


밖에 풀어놓은 돼지 농장을 보면서 돼지는 돼지 냄새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사람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가능한 냄새 덜나게 하는 뭔가 돼지답지 않은 방식으로 사육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했다.


남편과 나는 농장샵으로 들어갔는데 B는 밖에 있겠다고 했다. 남편은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말이하고 싶어 못 참는 성격이다. 게다가 농장 주인 아들 둘이 모두 남편 학교에 재학 중이라니... 둘의 대화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보통 이러면 B가 이제 그만 가자고 재촉을 할 만 한데 우리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돼지에 푹 빠져 있었다. 집에 가자고 할 때도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되냐고 우리를 붙잡아 두었다. 그날 돼지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어왔나 모른다. 동영상도 함께. 귀여워 죽겠다며 핸드폰 바탕화면도 그 돼지사진으로 바꿨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가족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매우 강한 어조로,

"난 오늘부터 채식주의자가 될 거야. 나랑 같이 하기 싫어도 뭐라 하지 않을게. 나한테 고기 먹으라고 강요하지 말아 줘!"

"해산물도 안 먹을 거야?"라고 내가 묻자,

"일단 해산물은 먹을게"라고 했다.


뭔가를 쉽게 결정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이유가 있겠지 하고, 나는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고, 최대한 도와주기로 했다. 생일이 돌아오고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돈가스를 해달라고 미리 부탁까지 했었는데, 혹시 생일 지나고 채식주의를 할 건지 물어봤더니, 돈가스는 안 먹어도 된다고 오늘부터 당장 하겠다고 했다.


B는 고기를 아주 좋아하는 아이였다. 오히려 큰딸이 육류에 더 까다로워서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영양사 선생님이 고기반찬이 나오는 날은 계란, 두부, 새우, 김 등 따로 준비해 줄 정도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소고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양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큰딸이 초등학교 간 첫 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 오늘 학교급식에 정말 이상한 음식이 나왔어! 국물에 고기가 둥둥 떠다니는 음식이 나왔어!"

"그거 이상한 음식 아니야, 소고기뭇국 같은데 한국사람들이 많이 먹는 음식이야. 엄마가 좋아하지 않아서 너한테 안 만들어줘서 그래"라고 했더니, 그 음식의 정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학교 급식에 나오는 고기는 안 먹겠다고 했고, 정말 영국으로 올 때까지 큰 애는 학교 급식에서 고기를 전혀 먹지 않았었다.


 B는 양고기가 육즙이 맛나다며 양갈비를 구워주면 이 맛있는걸 왜 안 먹냐고 언니를 놀려대곤 했었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갈비찜, 돈가스, 소시지, 소고기스튜이다. 심지어 채소랑 콩류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이다. 그랬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채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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