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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래서 그랬어요.+16

알면서 져 주시더라고요. 

큰아들과 대화하다가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던 날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요즘 고민이 점점 많아집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키가 쑥쑥 크지 않는 것이 최고의 고민이고요. 거기에다가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려는데 부비동염이 심해서 머리도 아프고 눈도 빠질 것 같은 통증에 종종 공부를 못할 때도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아야 하고요. 매일 약을 먹고 세척도 꼬박꼬박 해야 상태가 호전될 수 있는데 벌써 총 3년이 넘어갑니다. 그런 일상에 사춘기 고민들이 점점 더해져만 가고 있어서 늘 머리가 복잡하고 피곤한 일상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아들이 약을 정해진 시간에 챙겨 먹지 않고 코세척을 빼먹었던 달은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었다는 검진결과를 받아 들게 됩니다. 그런 결과를 받은 날은 차에 타서 집에 도착 때까지 혼냅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다 보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챕니다. 아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문 밖만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서야 멈추게 됩니다. 



"의지를 가지고 약 챙겨 먹지 않았으니 결과가 안 좋았고 계속 아픈 거다. 아프니까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거 아니냐"면서 혼내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아빠 속이 풀릴 때까지 반복하니까 왕잔소리가 되고 아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입니다.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들어서 바라봤다가 또 의지를 가지고 해내지 못하는 아들로 생각하면서 더 많이 혼낸 것입니다.  



'의지를 가지고 해내지 못하는 아들'로 생각하는 이유는 부모로서 겪는 시행착오를 자기 선택 없이 감당해 줬다는 사실에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아들이 조르지 않아도 해주고 동생들을 챙겨주다가 더불어서 '미리' 필요를 채워주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악착같이 하는 것이 없고 절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깔려있어서 그렇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집에 오는 내내 왕잔소리를 들었던 아들은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한참을 잔소리한 게 미안해서 간식으로 기분을 돌려주지만 왕잔소리만큼 아들 마음에 왕상처가 자리 잡아 버린 것입니다. 그런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들 방에 들어가서 "미안타"하고 사과하면서 아들을 안아 줍니다. 이제는 잘못한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도 곧잘 합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나지막이 한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일부러 저 주시더라고요. 


"야! 미안하다! 네가 시간 맞춰서 약만 챙겨 먹었으면 좋았을 텐대라며 혼냈네... 아빠가..." 

"안 챙겨 먹고 그러는 널 보며 속상하다 보니 혼냈다.. 미안타!"


"아니.. 에.. 요! 아빠!!... 그런데....." 

"그런데 뭐?"


"엄마는 안 그래요. "

"뭐?"


"엄마는.... 제가 피곤해서 나중에 코세척하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세요. 그러다가 빼먹어도 뭐라 안 하세요."

"그게 뭘?" 

"엄마는 제가 그럴 줄 아시면서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엄마는 알면서 져 주시더라고요."


아들의 마지막 말을 듣고 진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약해이고 의지박약 하고 생각하며 바라본 아들 입에서 생각지 못한 깊은 울림 있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아들의 그 한마디는 제 마음에 깊은 울림과 충격을 전해줬습니다. 아내의 교육 방법이 좋았다는 느낌과 그런 아내의 마음 씀씀이 덕분에 아들은 마음의 여유와 사랑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충격은 컸습니다. 그 말을 듣고 혼자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그 말이 계속 맴돌면서 제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다 알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알면서 저 주시더라고요."

"엄마는.... 다.... 알면서....."

"일부러..... 져....."

"주.. 시.. 더.. 라.. 고.. 요."



아들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돌아본 제 모습이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제게 그나마 용기를 내서 말하고 알아달라고 했던 그 마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알면서 져 주시더라고요." - 아빠! 저 좀 이해해 주세요. 요즘 너무 힘들어요 저한테 가끔 틈을 주세요. 엄마처럼요. 엄마는 알면서 그래주시니까 숨 쉴 틈이 있어요. 아빠! 부탁이에요. 저도 노력할게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예전 같으면 아이들을 이해하며 은근히 받아주는 아내교육철학에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잘 안다고, 뭘 잘한다고....'라면서 전공과 육아 현실이 다르다며 반발심을 가졌습니다. 요즘에 아이들 말을 되새기면서 지내다 보니 아이들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사랑하고 받아주면서 아이들을 포용하는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귀가 열리기 시작했고 제 마음밭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용기 내서 속마음을 꺼내기 시작했고 그 말들을 깊이 생각해 보면서 행동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습니다. 





아이들 말 번역은 나비효과가 있습니다. 

가정회복이 주제인 제 글에 소규모 프로젝트로 아이들 말 번역을 진행하면서 회차를 거듭할수록 제 마음밭이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고요. 그 말의 깊은 속뜻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요. 아이들도 점점 용기 내서 "아빠!!"라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아이들을 혼내기만 하는 저를 보면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아내도 조금씩 가능성을 느끼는 것같습니다. 



아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진짜 '의지 약한 아들'로 생각하고 뭔가를 해낼 때마다 불만스럽게 바라본 아들이었는데 어느새 키가 자라듯이 마음크기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알면서 모른척해주기도 하고요. 아빠를 생각해서 말 안 하고 감당해주기도 했고요. 아빠와 갈등상황을 겪으면서도 엄마가 '모른척하면서 받아주는'것들로 위안을 삼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어느새 용기를 내고 혼낸 아빠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들의 그런 모습에 제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들은 몸과 마음이 정말 커가고 있습니다.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제게 공감의 마음이 더 커져갑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말을 해도 일단 너 생각이 틀렸어!'라면서 듣지를 안 했습니다. '너보다 어른인 내 생각이 맞지!'라면서 아이들이 억울하다고, 분하다고, 속상하다고 말해도 잘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속상했구나!' '억울했구나!' '아빠가 잘못 판단했구나!'라면서 아이들 마음을 공감 먼저 하고 그 이후에 혼내는 일도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순서를 바꾸라는 말을 들어도 못 했는데 요즘은 서서히 공감의 마음을 통해 행동도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의미 있는 일들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지 못한 효과가 있어서 제 스스로 놀라고도 있습니다. 아내의 양육방법에도 더 동의하면서 제 행동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큰아들말을 번역하면서 감동도 있었고 행동도 바꾸는 계기가 된 일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런 글을 읽어주심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추석 연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세요.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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